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심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백제문화 제71호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5 - 46 (4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현재까지 16기 정도가 확인된 영산강유역권 전방후원형 고분의 피장자에 대한 기존 연구를 검토하고, 전방후원형 고분의 축조 배경 및 피장자상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본고에서는 영산강유역이 다양한 문화가 ‘共存’하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전방후원형 고분을 살펴보았다. 전방후원형 고분이 축조된 5세기 후반~6세기 전반 백제는 영산강유역에 王·侯를 파견하고 檐魯를 설정하여 백제의 직접지배 지역으로 편제하고자 하였다. 영산강유역은 백제 수도로부터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이고, 농업생산력이 높은 지역이라서 독자적인 경제적 기반 확보가 가능한 곳이었으며, 언제든지 바다를 통해 외부와 통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자율성이 보장되어, 5세기 후반 단계에 와서야 백제의 직접지배로 전환하는 과정을 밟게 되었다. 전방후원형 고분도 영산강유역이 백제의 직접지배 하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조영된 하나의 묘제였다. 영산강유역은 주변 지역과 문화적 접촉이 많고, 인적 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다양한 계통의 문화가 혼재하고 있었는데, 백제가 이 지역에 지배력을 확대해가는 과정에서 대결구도보다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존의 구도를 취하게 되면서 나온 특징적인 양상이었다. 교역로의 형성으로 교류에 따른 문화 요소의 유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방후원형 고분에 대해 과도하게 정치적 의미를 부여해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개개의 사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에서 영산강유역 전방후원형 고분의 피장자를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왜계의 피장 주체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피장자의 다수는 백제 중앙 관할 하의 재지세력가가 아닐까 한다. 백제 중앙의 관할 하에 있으되,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진 영산강유역 재지사회의 세력가, 특히 해안이나 수로 교통로상의 요충지에 자리잡은 재지세력가가 다수를 차지한다. 고창 칠암리 고분의 피장자 또한 이 범주에 해당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