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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유역 고대사회와 백제에 의한 통합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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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ient Society in Yeongsan River Basin and the Process of Unification by Paekje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성락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20권 제1호 KCI Accredited Journals
발행연도
2017.5
수록면
7 - 32 (26page)
DOI
10.17068/lhc.2017.05.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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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유역 고대사회와 백제에 의한 통합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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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유역의 고대사회는 고고학적으로 철기문화와 삼국시대 고분문화로 구분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마한과 백제로 구분된다. 마한의 형성은 철기문화가 시작되는 기원전 3~2세기경부터이지만 마한의 소멸시기에 대하여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특히 영산강유역에서는 4세기 후반에 백제에 편입되었다는 주장과 6세기 전반까지 마한이라는 주장이 있으며, 그 절충안으로 4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까지 백제의 간접지배를 받았다는 견해도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의 고대문헌에서 마한에 대한 기록이 각기 다르게 나타나듯이 마한에 대한 인식도 연구자들 사이에도 차이가 나고 있다. 한국사의 틀에서 보면 영산강유역에서 마한은 4세기 이후에 존재하였다고 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중부지역의 마한 중심세력이 백제에 통합되면서 마한의 존재가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진한과 변한이 각각 신라와 가야로 변화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영산강유역에서 백제의 통합과정은 다음과 같다. 4세기경에 들어서서도 아직 백제적인 문화요소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토착세력인 소국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4세기 후반부터는 백제와 관계를 가지면서 간접지배, 즉 공납적 지배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475년에는 한성백제의 붕괴로 인해 일시적으로 독자적인 양상이 나타나고 있었지만 498년 동성왕의 친정에 의해 다시 백제의 지배하에 포함되었고, 6세기 중엽경 백제의 지방으로 편재되었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영산강유역 고대사회와 마한
3. 마한과 백제와의 관계
4. 백제에 의한 통합과정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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