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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문형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저널정보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호남고고학보 제72권
발행연도
2022.10
수록면
136 - 169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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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유역을 포함한 호남지역에서는 5세기 말∼6세기 초에 계통성이 단절된 일본 야먀토정권의 대표적인 묘제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 축조된다. 현재 전방후원분은 한반도 호남지역에서 13개소 유적에서 총 15기가 분포한다. 현재까지 전방후원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몇 가지 주요 특징을 정리하면 ① 옹관고분의 핵심지역인 나주지역을 회피하고(의도성) 외곽 수로 상의 요충지에 조영된 점, ② 한시적인 시기(웅진기 후반)에 단독으로 축조/분포되는 점, ③ 매장시설의 비연속적이면서도 통일성이 없는 점, ④ 출토유물에 있어 계통의 다양성과 위계성이 차이를 보이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기존 연구 성과에서 전방후원분 피장자의 성격에 대한 견해로는 재지세력설, 왜인설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전방후원분의 분포 현황과 출토유물을 검토한 결과 피장자는 재지세력보다는 백제와 왜와 관련성이 높은 인물로, 그 피장자는 백제에 의해 한시적·임시적으로 분사(分使)된 왜(계)의 군사로 파악된다. 따라서 전방후원분은 ‘백제에 의한, 그리고 백제를 위한’ 불가피한 정치적인 상황에서 나타난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다. 백제는 한성 함락과 웅진 천도의 혼란에 따른 지방사회의 동요와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지방의 지배력을 강화할 필요가 생겼다. 특히, 공주로 연결되는 금강 수로의 안전한 확보와 왜와의 교류를 위한 영산강 유역에 대한 지배력이 가장 시급했을 것이다. 백제의 강력한 지방 통제 정책은 나주를 중심으로 한 영산강 유역의 옹관고분 세력들이 반발하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지방 세력의 반발을 견제하기 위해 탐라 조공을 빌미로 친히 무진주(광주)로 출정(498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재지세력의 중심지인 나주(羅州)를 적극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왜(계)의 군사를 분사 배치했던 것으로 파악되며, 그 고고학적 증거가 전방후원분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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