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은숙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몽골학회 몽골학 몽골학 제77호
발행연도
2024.5
수록면
87 - 115 (2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元을 대표하는 교통로인 역참은 군대와 군수품을 이동시키는 수단으로 개발되었다. 전쟁 이후에는 원과 주변 국가의 공적 사무나 교역을 위한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활용되었다. 中原과 安南을 연결하는 육상 교통로는 당대 개척되기 시작했으나 활발하게 사용된 시기는 원대부터이다. 원이 구축한 안남 간 교통로는 우회 노선을 직선화하여 시간을 단축하고, 60리마다 역참을 건설함으로써 교통로의 안정과 지속성을 강화하려 했다. 양국의 대표적인 육로 교통로는 ①重慶~蒙自~탕롱과 ②중경~邕州~탕롱을 잇는 노선이다. ①은 雲南行省의 중경을 출발해 가파른 산악을 직선으로 달려 몽자에 도착한 뒤에 홍강을 타고 안남으로 들어가는 길로 남송 정복 이전에 양국 사신이 이동하던 길이었으나 산악을 통과해야 하므로 시간 소요가 많은 단점이 있었다. ②는 원이 옹주를 접수한 후에 개척한 길로 양국을 잇는 가장 빠른 교통로로 주로 사신의 이동 루트나 교역로 이용되었다. 이 길은 진남왕 토곤이 조성한 역참로인데, 안남왕이 두려워할 정도로 안남 내까지 60리마다 역참이 매우 조밀하게 설치되는 특징이 있다. 1284년에 역참 설치 이래 1~2년 간격으로 안남 사신은 이 루트를 따라 대도로 와서 헌상품을 전달하였고 원의 하사품도 이동하였다. 안남의 헌상품은 황족들의 사치품으로 충당되었고, 원의 선물은 안남왕의 권위를 높이는 의례 용품으로 이용되었다. 이 시기 안남으로 들어가는 입구 역참인 永平寨가 민간 교역의 중심지로 번성하였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