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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순발 (충남대)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15호
발행연도
2024.9
수록면
5 - 44 (40page)
DOI
10.37331/JKAH.2024.09.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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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체제는 서한 무제(武帝)이전까지 재상(宰相) 중심이었으나 그 이후 궁중 내관(內官)인 상서(尙書)를 통한 황제권의 영향을 확대하면서 동한대에 이르러 상서대(尙書臺)가 3공9경을 대신하게 된다. 동한 말 승상(丞相) 지위에 있으면서 정권의 핵심인 상서대를 장악한 조조(曹操)가 조영한 업성(鄴城)의 궁성은 상서를 중심으로 하는 내조(內朝) 중심의 정치 공간과 함께 황제의 정무 공간인 외조정전을 나란히 배치한 병렬제(騈列制)였다.
백제는 처음 재상 중심제의 일종인 좌ㆍ우보제(左ㆍ右輔制)에서 고이왕 27년 이후 좌평제가 성립되면서 국왕 친정(親政)으로 전환되고, 그에 따라 왕의 남당(南堂) “청사(聽事)”가 시작된다. 양한(兩漢) 시기 중앙의 재상부(宰相府)나 지방의 군(郡) 태수부(太守府) 및 교위부(校尉府)등 정무 공간은 규모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 구조는 다르지 않다. “중당(中堂)” 혹은 “정당(正堂)”으로 부르는 정전 남쪽에 행정을 담당하는 제조(諸曹) 관서(官署)가 위치하는 구조이다. 백제의 “남당”은 중당 남쪽의 제조 구역에 위치한 정사당(政事堂)을 의미하는 명칭으로서 그 기능은 상서대의 조당(朝堂)에 상당하는 것이다. 남당의 설치로 인해 백제의 궁성의 정무공간은 중국의 병렬제와 다른 단일 중축선 체제를 취하게 된다.
본격적인 독립능원제(獨立陵園制)는 진시황(秦始皇) 능원에서 시작된다. 서한은 진(秦)을 계승하면서, 황제릉과 황후릉을 동영(同瑩) 이혈(異穴) 합장하였다. 동한은 황제와 황후를 동혈(同穴) 이실(異室) 합장하고, 봉분의 형태도 진시황릉 이래의 복두형(覆斗形)에서 원형으로 바뀌고, 동시에 묘실도 동서 방향의 수혈식에서 남북 방향의 횡혈식으로 전환하였다. 능원의 경계 또한 종전 항토장(夯土墻)에서 죽목(竹木) 울타리 형태의 행마(行馬)로 대체하였다. 위진(魏晉) 및 남조(南朝)는 기본적으로 동한제도를 계승하였으나, 북위는 황제 황후 동영 이혈 합장 방식의 서한 능원제를 수용하였다. 웅진ㆍ사비기 백제는 동시기 중국의 남조 능원제와 높은 유사성을 보인다. 특히 능묘의 위치 선정과 관련한 상묘(相墓) 혹은 풍수(風水) 사상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황실을 비롯한 권문(權門) 사족(士族)은 혈연적으로 가까운 직계성원들을 같은 능묘원에 함께 안장하는 취족장(聚族葬)을 채택하고 있었는데, 백제 역시 그러하다.
“임나(任那)”는 삼한(三韓) 가운데 변한(弁韓) 지역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400년 무렵 고구려 남정(南征) 이후 신라의 남쪽 연해지역을 중심으로 누대에 걸쳐 일본열도를 왕래하던 해상세력의 거점이었던 지역 혹은 정치체를 통칭하는 용어이다. “임(任)”은 “님”의 뜻과 함께 담보(擔保) 혹은 질(質)로써 맡긴다는 의미이고, “나(那)”는 땅이나 정치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명명(命名) 주체는 5세기 초~전반 당시 정세를 주도한 고구려이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궁성구조론
III. 중국 능원의 변천
IV. 임나(任那) 기원론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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