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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수연 (이화여대)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55호
발행연도
2024.9
수록면
43 - 80 (38page)
DOI
10.31218/TRKH.2024.9.15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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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고려시대 신중신앙의 양상을 신중원과 신중도량을 중심으로 살피고, 제석신앙과 구요신앙과의 관련성 속에서 그 성격을 고찰한 것이다.
신중은 불교의 수호신으로, 여래를 찬탄하고 불법을 수호하며 불교에 귀의한 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고려시대 신중신앙을 제일 처음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태조 7년(924)의 神衆院창건 기사이다. 신중원에서는 나한, 범천, 사천왕, 천룡팔부 등이 독립적 신앙 대상으로서 봉안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중신앙이 의례로 구현된 것이 신중들의 名號를 외며 기도하는 神衆道場이다. 신중도량은 총39회 개설되는데, 이 중 38회가 고려 후기에 설행되었으며 특히 최항 집권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신중도량은 신중도량, 천병신중도량, 화엄신중도량, 천병화엄신중도량 등 네 가지 종류가 있다. 최항 집권기에 화엄신중도량이 나타나면서 기존 신중도량이 모시는 존격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천병신중도량이라는 명칭으로 계승된 것 같다. 화엄신중은 화엄경의 40위 신중이, 천병신중은 팔부중과 그 권속이 중심을 이룬다. 천병화엄신중도량은 이러한 천병신중과 화엄신중을 함께 모시며 기원을 올리는 의례였을 것이다.
태조 7년에 신중원은 외제석원, 구요당과 함께 창건되었다. 최항 집권기 신중도량이 집중적으로 개설될 때에는 왕의 외제석원, 구요당 행행이 함께 나타난다. 이러한 사례들로 미루어 보아 제석, 신중, 구요는 상호 관계가 있는 신앙으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석은 왕의 권위를 보장해주는 천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왕의 신중원 행차는 제석 의례와 마찬가지로 연초에 주로 이루어진다. 신중원에서 모셨던 다양한 신중들에게 국왕과 국가의 호위를 부탁하고 복을 빌었던 신년 행사이기 때문이다. 한편 늦어도 무신집권기 이후 제석이 구요를 관장한다고 여겨졌던 것 같다. 이와 같이 최항 집권 시기에 신중도량을 개설하면서 외원과 구요당에 행차하는 것은 외제석원‧구요당‧신중원을 함께 창건한 태조 왕건이 귀의하고 의지하였던 여러 성중을 다시 소환하는 의미가 있다. 나라를 외호하는 제석과 구요, 신중을 신앙하며 몽골의 침입이라고 하는 국가적 위기상황을 타개하고자 한 것으로 생각된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神衆院 창건과 왕의 친행
Ⅱ. 神衆道場의 개설
Ⅲ. 신중신앙과 帝釋·九曜信仰의 상관성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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