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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배재욱
저널정보
주안대학원대학교 주안신학논단 주안신학논단 2024 제2집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133 - 175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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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역 최초의 복음 전도자인 배위량 선교사는 대구·경북지역의 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대구·경북지역의 교회는 3.1운동 시기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 그런데, 대구·경북지역에서 3.1운동이 일어난 발상지는 배위량의 제2차 순회전도 여행한 지역과 거의 일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가 대구·경북 지역 교회에 끼친 영향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의 일기에 나타나는 마을 이름인 ‘Ansaipyuri’(‘안새부리’)는 선교·문화사적인 의미에서 중요하다. 그것은 이 마을이 배위량의 선교활동에서 중요한 열쇠어(Schlüsselwort)가 되고 한국 초기 선교 역사를 이해하는 데 기본적이고, 중요한 토대를 이루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안새부리(Ansaipyuri)에 대한 역사·지리학적인 탐구”를 통하여 다음 2가지 소주제를 다루고자 한다. 1. 안새부리에 대한 연구가 왜 필요한가? 2. 안새부리가 어디인가? 3. 안새부리가 왜 신촌리 안마을인가? “안새부리의 위치에 대한 역사·지리학적 이해”를 통하여 안새부리의 위치를 찾고자 배위량의 일기 본문을 분석하고 인문학적인 분석과 현장 탐방를 통하여 “안새부리(Ansaipyuri)에 대한 역사·지리학적인 탐구”를 진행하게 될 것이다. 팔조리의 출발점은 팔조령에 그 기원이 있다. 자연부락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 팔조리는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상당히 늦게 형성된 마을이므로, 팔조리를 1893년 4월 21일에 배위량이 잠을 잤던 마을인 안새부리로 보는 것은 역사·지리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 그리고 몇 가지 정황상 팔조리가 배위량이 말하는 안새부리라는 주장은 역사적인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
“안새부리의 위치에 대한 역사·지리학적 이해”를 통하여 안새부리의 위치를 찾고자 배위량의 일기 본문을 분석하고, 현장 탐방과 인문학적인 사고를 통하여 “안새부리(Ansaipyuri)에 대한 역사·지리학적인 탐구”를 진행하게 될 것이다. 배위량은 안새부리(Ansaipyuri)라는 산골마을에서 1893년 4월 21일 밤에 잠을 자고 이튿날 아침에 팔조령을 넘어서 대구를 향하였다. 역사·지리학적인 판단으로 볼 때 안새부리는 ‘신촌리의 안 마을’로 추정할 수 있다. 1893년 4월 21일에 배위량이 여행한 경로는 청도 읍치에서 나와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학산리 방향으로 향하다가 토평리와 고철리를 거쳐 당시에 차북면 소재지인 상당동(현재 신촌리 상당마을)을 거쳐 청도 역사의 현장인 ‘신촌리 안 마을’로 와서 하룻밤을 쉬어 갔다고 본다. 옛날부터 ‘새벌’로 불리던 신촌리는 배위량이 처음으로 청도를 방문했던 1893년 당시에는 ‘새불’ 또는 ‘새부리’로 불렸고, 지금은 그 말의 후기 변화 형태인 ‘새월’이란 지명으로 불린다. 이런 논증에 따라 ‘안새부리’는 ‘신촌리의 안동네’로 추정된다.

목차

한글초록
Ⅰ. 서론
Ⅱ. ‘안새부리’에 대한 연구사
Ⅲ. ‘안새부리’가 어디인가?
Ⅳ. 안새부리가 왜 신촌리 안 마을인가?
Ⅴ. 결론
참고문헌
영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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