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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은제 (창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중세고고학회 한국중세고고학 한국중세고고학 제4호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5 - 24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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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고려전기 경기제의 성립, 변화과정을 기술하고 그것이 어떤 배경에서 이루어졌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고려가 건국된 이후 태조 왕건은 자신의 근거지인 송악과 인근의 개성현을 통합해 개주를 설치하였다. ‘호족’들에 대한 통합과 제압을 통해 건국된 고려는, 건국직후 지방에 대한 체계적 통제를 실현하기 어려웠다.
고려가 지방을 본격적으로 제어하기 시작한 시기는 성종대 부터였다. 성종은 이전시기 지속적으로 시행되어온 양전과 호구조사를 바탕으로 ‘치읍(置邑)’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였고 그 결과 성종 14년 일련의 제도개혁을 일단락 지을 수 있었다. 이 제도 개혁과정에서 성종은 당나라의 제도를 모방하여 전국을 10도로 나누고 개경을 6개의 적현과 7개의 기현으로 구분한 뒤 개성부로 하여금 관할하도록 했다. 성종대 적 · 기현제는 한편으로는 전국적 적(籍)의 작성이 완료된 시기에 이루어 진 결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거란의 위협이라는 상황에서 군사적 성격의 제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성종대 마련된 적 · 기현제는 현종 9년 경(京)과 기(畿)를 구분한 경기제로 변화한다. 현종 9년 경내와 기를 구분하여 경은 5부로 구획하고 기는 12개 현을 나누고 개성현이 주현으로 3개의 속현을 관할하고 장단현이 주현으로 7개의 속현을 관할하였다. 이러한 체계는 현종 9년 완비된 주현-속현체계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현종대 경기제의 확립에서 보다 중요한 사항은 경내와 기가 구분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의 복구가 필요했고 특히 송악성과 나성을 축조하여 공간적으로 경내(京內)와 경외(京外)가 구분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제도 개혁이었다. 경기는 문종대 다시 한 번 변화를 맞는다. 비록 그 변화에 대해서 연구자들 사이에 논란은 있지만, 문종대 양전, 전품규정, 전시과의 분급과 더불어 개경 인근 지역에 대한 일정한 재편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고려전기 경기제의 개편은 성종대, 현종대, 문종대 각각 1차례씩 이루어졌다. 이러한 경기제의 개편은 기본적으로는 국가의 재정운영과 잇닿아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적 필요성에 의해 규제받기도 하였다. 성종대에는 수취체제의 정비과정에서 경기제의 개편이 이루어졌고, 현종대에는 거란의 침입과 나성의 축조와 더불어 경기제의 개편이 이루어졌으며, 문종대에는 전시과의 개정와 연관되어 경기제의 개편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보면 경기제의 변화는 하나의 원칙하에 일관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해당 시기 상황의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 진 것으로 판단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성종 14년 赤 · 畿縣의 설치와 그 배경
Ⅲ. 현종 9년 경기의 설치
Ⅳ. 문종대 경기제의 변화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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