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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소현숙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저널정보
불교미술사학회 불교미술사학 불교미술사학 제37권
발행연도
2024.3
수록면
161 - 187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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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7세기 후반 당나라에서 출현하는 인도풍의 확산이라는 문화변동에 개입하는 ‘힘’과 그 ‘매개체’를 탐색한 것이다. 과거 학계는 7세기 인도풍의 확산을 주도한 인물로 645년 17년간의 인도 여행을 마치고 7구의 불상을 갖고 귀국한 玄奘을 지목했다. 본 연구에서는 당시 관련 기록과 7세기 후반 낙양 일대에서 제작된 우전왕상의 사례를 통해 이와 같은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나아가 王玄策 등의 인도 使行團이 갖고 온 시각 및 물질자료의 유포가 인도풍 확산에 더욱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논증했다. 그들이 인도에서 모사해 온 많은 자료 가운데 보드가야 정각상과 佛足石이 있었으며, 두 聖物은 7세기 후반 당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로 유포되었다. 7세기 후반 인도풍의 유행과 관련하여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매개체는 西域志다. 이 책은 666년 고종의 칙령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서역 각국의 物象을 60권의 글과 40권의 그림에 담은 방대한 서적이었다. 서역지는 편찬 이후 곧바로 유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와 관련한 발췌본이 곧바로 민간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현존하는 瑞像圖類의 그림에서 보듯, 돈황과 일본 등지로도 널리 확산되었다. 이처럼 7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당대 인도풍의 유행에는 국가의 공식적인 외교사절단이 인도에서 그려온 불교 조상의 모사도와 당 왕조의 官撰書인 서역지 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해 인도풍의 유행과 그 확산을 추동 한 힘은 당대 皇權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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