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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병록 (세종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영남고고학회 영남고고학 영남고고학 제98호
발행연도
2024.1
수록면
5 - 31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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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에 농경의 비중이 높아지는 가운데 농경의례 역시 활발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실증적 증거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도 이종철(2015;2018;2021;2022;2023)은 대형취락의 입목수혈을 근거로 다양한 제의적 요소를 찾아내었을 뿐 아니라 선-원사시대 솟대의 등장에 대한 기원문제까지도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논증하였다. 그러나 입목수혈을 둘러싼 제의 논의는 진안 여의곡유적과 김해 율하리유적 두 곳의 사례가 가장 주된 역할을 한 만큼 유사사례를 통해 그 진의를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두 유적의 경우 모두 하나의 입목수혈이 확인되지만 취락내 각기 다른 영역을 연결하는 매개체라고 하기보다는 묘역의 부속시설일 가능성 더 커 보인다. 더구나 대구 지역의 여러 유사한 사례를 검토한 결과 묘역의 경계 및 무덤 조성 순서를 지침하는 묘표 역할이 더 확연해 보였다. 그리고 이종철이 주장하였던 입대목 제의는 대구 동천동유적의 사례처럼 두 개의 입목수혈이 같이 확인되는 경우에 그 신빙성이 더 높아 보인다는 점에서 같은 입목수혈이라고 하더라도 그 위치에 따라 그 역할이 전혀 다를 수 있다. 나아가 입대목 제의와 솟대를 별도의 기원을 가진 것으로 판단하였던 기존 의견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였는데, 솟대 상부에 장식된 새의 조형(鳥神)은 이미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부리형석기로 형상화되어 유래되었음을 고증하고자 하였다. 이는 결국 입대목 제의와 솟대는 분리될 수 없는 청동기시대 농경문화의 한 유산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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