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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대영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전북사학회 전북사학 전북사학 제70호
발행연도
2024.3
수록면
35 - 58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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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고려 말에 설치된 익군의 설립 시기를 비정하여 설립 목적에 대해 밝히고, 익군의 구조 및 운영 방식을 분석하여 그 특징을 규명하고자 했다. 익군은 원뿐만 아니라 원 간섭기 고려에서도 중군을 보조하는 임시부대의 의미로 활용되었다. 고려 말에 설치된 익군은 쿠빌라이 칸의 주둔군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으며, 상비군으로서 지방의 요충지를 방어한다는 목적에서 그 성격이 비슷하다. 하지만 공민왕은 고려의 실정에 맞추어 익군을 군민일치 형태로 운영하였다. 익군의 설치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본 연구에서는 공민왕 12년 덕흥군의 난 때 서북면의 각 지역에 병력을 조직하였을 때부터 익군이 설치되었다고 본다. 공민왕 11년 군민만호부가 붕괴되고 홍건적의 3차 침입이 예고되었을 때부터 서북면 군사체제의 정비는 필수불가결했고 덕흥군의 반란은 군사를 동원하고 체제를 조직하기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익군은 이 시기부터 서경·안주·의주·이성·강계 다섯 지역에 배치되었고 우왕 3년에 32개 부대가 확정되었다. 익군은 종 2품인 봉익대부 이하의 품계 및 농민·화척·재인·노예·사인·향리가 모두 동원된 군민일치의 총 동원 체제로 운영되었으며 서북면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부역이 면제되었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고려가 망할 때까지 운영되었으나 이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채 실시되었던 우왕의 전국적 확대는 여러 반발을 낳은 채 실패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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