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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명헌 (국립문화재연구원 고고연구실)
저널정보
한국상고사학회 한국상고사학보 한국상고사학보 제123권 제123호
발행연도
2024.2
수록면
149 - 17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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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은대리성에서 출토된 고구려 토기에 대한 검토를 실시하여 은대리성의 활용 연 대를 추정해 보고자하였다. 검토 결과 은대리성 출토 양이부호는 중국지역과 남한지역(원주 건등 리 유적 출토품 제외)에서 지금까지 동일한 형태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남한지역에서 동시기(5세 기 중후반) 양이부호들과의 형태 차이가 명확히 관찰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차이는 당시 토기 제 작 집단이 달랐던 것으로 추정하였고, 그 차이의 원인은 시기차이로 판단된다. 그리고 은대리성 양이부호는 고구려의 남진 과정 중 현지에서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에 대한 근거로 토기 표면에서 확인되는 타날흔과 주변 재지계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들과의 유 사성을 들 수 있다. 또한 남한지역 출토 양이부호의 경부 형태를 4가지로 구분하여 I형부터 IV형 까지 형태에 따른 편년을 시도한 결과 은대리성 양이부호는 II형의 경부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시기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로 판단된다. 따라서 은대리성 출토 토기가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로 판단되는 만큼 기존 인식과는 달리 장수왕보다는 광개토왕의 남진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추정하였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은대리성의 장수왕대 활용설에 대한 검토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은대리성이 장수왕의 남진 과정 중 축조되었다고 보기 힘든 여러 문제점이 확인되었는 데, 첫째, 장수왕의남진과정중축조된다른관방유적은목책으로조성되었다는점, 둘째, 은대 리성 출토 양이부호와 5세기 중후반대 양이부호와의 형태 차이가 두드러진다는 점, 셋째, 성 내부 에서 고구려 시기로 판단되는 유구가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 넷째, 동일한 곳에 입지한 은대 리성과 전곡리 목책유구와의 관계를 고려해 볼 때 은대리성의 축조 필요성이 낮다는 점 등이 있다. 이후 은대리성이 광개토왕의 남진 중 축조되었다면 어떻게 활용되었을지 고찰해보았다. 은대리 성은 군사적인 목적으로 축조한 것으로 보이며, 409년 광개토왕이 국동에 축조했다는 6개의 성 중 하나로 언급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고고학적으로 검토한 결과 국동 6성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 로 판단된다. 그리고 최근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의 고구려와 백제의 접경 지역이 예성강 이남에서 임진강 이북에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주목되는데 본고에서 파악한 은대리성의 고고학적 정황 이 이헤 부합한다. 따라서 은대리성은 광개토왕이 남진 과정 중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했지만 접경 지역이 예성강 이남에서 임진강 이북으로 형성되면서 임진⋅한탄강 유역은 공백지가 되었고, 이곳 에 위치한 은대리성은 축조할 당시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폐기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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