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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현석 (한국해양대학교)
저널정보
대한일어일문학회 일어일문학 日語日文學 第100輯
발행연도
2023.11
수록면
89 - 104 (1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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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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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산정은 1936년 마산부의 추산공원 조성공사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추산공원으로 불리며, 마산지역 조선인들의 공원이자 광장과 같은 장소로 이용되고 있었다. 추산정은 환주산 혹은 공신산 공신당산이라고 불리는 산 아래 있었던 큰 활터이자 동시에 정자를 가리키는 용어였다. 추산정은 독서를 하며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쉼터였으며, 남녀 각종 단체들이 노동자 집회, 순종 망곡식, 원유회 등 다양한 목적의 행사를 진행한 광장과 같은 곳이기도 했다.
1930년대 중반까지 마산부의 공식적인 공원은 마산신사와 공간을 공유했던 마산공원이 유일했다. 때문에 1920년대 중반부터 마산 조선인 유지자들은 추산정 일대를 마산공원과 같은 공원으로 조성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이 같은 추산정의 공원화가 논의되기 시작된 것은 1927년 임학박사 혼다 세이로쿠가 추산정 일대를 둘러본 후 해당 부지가 공원으로서 최적지라고 언급한 이후부터였다. 그러나 마산부윤이 교체된 이후 마산부는 추산공원의 공사에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공사는 계속 지연되었다. 이에 마산부협의회의 황갑주 의원 등은 마산부의 소극적이고 편파적인 태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항의를 하였다.
결국 1936년도 예산에 추산공원과 관련된 사업예산이 상정되었고, 그해부터 5개년 계속 사업으로 공사는 진행되게 되었다. 이로써 마산 조선인들도 일본인들의 마산공원과 같이 근대적으로 정비된 공원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오래전부터 추산정 일대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던 20여 호의 빈민들은 생활의 공간을 잃게 되었다. 마산 추산정의 공원화 사업은 민족과 계급의 이중적 차별이 바탕에 깔린 일제강점기 도시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목차

Abstract
1. 들어가기
2. 선행연구분석 및 연구방법
3. 추산정의 위치와 관련지명
4. 마산조선인사회와 추산정
5. 나가기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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