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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문식 (숭실대학교)
저널정보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인문과학연구 제36호
발행연도
2023.2
수록면
9 - 4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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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후기에 편찬된 양평 지역 읍지를 통해 조선시대 양평의 사회와 문화의 실상을 정리하였다. 전근대 시대에 양평은 미지산彌智山을 경계로 서쪽의 양근楊根과 동쪽의 지평砥平 두 지역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두 지역은 1908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통합되기 전 조선 후기에 이미 두차례 병합되었던 전례가 있었다. 이는 두 지역이 미지산을 공유하면서 연접해 있었고 육로 및 수로교통이 이어지는 등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 후기 읍지에 기록된 양근・지평의 가호와 인구는,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볼때 1740년대부터 1840년대까지 감소하는 추세였다가 1840년대 이후 19세기 말까지는 다시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지역의 농업은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중심이었으며, 경작이 이루어져 국가에 조세를 납부하는 실결實結의 수는 18세기 중반 이후 19세기 말까지 계속 감소하는 추세였다. 양근과 지평은 미지산을 중심으로 많은 사찰과 암자들이 조성되는 등 불교문화가 상당히 발달한 지역이었다. 이 지역의 불교문화 발달에는 고려 말 공민왕의 왕사王師였던 승려 보우普愚가 이지역 출신으로 양근의 소설암小雪庵에 우거했던 것이나 지평의 상원사上元寺가 조선 초 불교계의핵심 인물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원찰願刹이었던 점 등 여말선초 왕실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이 중요한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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