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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용진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저널정보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남도문화연구 남도문화연구 제44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217 - 249 (33page)
DOI
https://doi.org/10.31929/namdo.2021.4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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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나말여초에 활동한 대경대사 여엄(862-930)의 입당구법과 행적을 통해 그의사법과 교류사적 특징을 밝히는 한편, 귀국 후 활동을 분석한 것이다. 여엄은 무량사로 출가하여 화엄학을 배웠고, 이후 선종의 성주사 무염과 그의 사법인심광화상을 승사수법하였다. 890년을 전후한 시기에 입당을 위해 서해 당항포를 출발하여 중국의 명주를 거쳐 강서 홍주를 경유하여 운거산에 주석한 동산 양개의 사법 운거도응과 교류하였다. 여엄의 비문에는 그의 법계를 청원 행사 사법 약산 유엄이 아닌남악 회양 사법인 마곡 보철로 기술하여, 여엄의 문도에 의한 개변이 추정되고, 그가참학한 낭혜 무염이 사법한 마곡 보철을 강조하였다. 여엄의 교류인물이나 구법루트는 그의 스승인 무염을 비롯하여 현휘나 경보 등과 교류 인물이 중복되지 않고, 당나라에서도 사무외사와의 상견 내용은 확인되지 않으며, 구법행로 역시 중복되지 않는다. 여엄은 9세기 초 입당구법승들이 남악 회양의 법사인마조 도일의 문하와 교류한 것과 달리 청원 행사계와 교류한 점이 특징이다. 불교 교류대상의 변화는 중국 불교계의 동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특히 선종 종파의 성쇠와관련이 있다. 여엄은 도응의 선법을 수용하고, 909년에 약 20년의 구법과 유력을 마치고, 무주승평으로 귀국하였다. 이후 영주와 풍기 지역으로 나아갔고, 그 지역의 軍事上國인 강공훤의 후원을 받았고, 919-923년을 전후한 시기에 왕건을 만나 자문하였으며, 양평 미지산 보리사에 주석하면서, 미지산문을 개창하고, 불법을 진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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