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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마은지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
저널정보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숭실사학 제50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471 - 501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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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프랑스 우파의 주요 단체인 ‘애국자연맹(Ligue des patriotes)’과 ‘프랑스조국연맹(Ligue de la patrie française)’을 중심으로 프랑스 우파의 구성요소와 본질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이 두 연맹이 당대에 영향을 끼치고 수많은 지지자들을 규합할 수 있었던 연맹들의 여론정치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다. 본연구의 접근방식은 두 우파 연맹을 이끌었던 주요 인물들의 성향 및 이념들, 회원들의 사회적 구성, 그들의 주장들을 통해 그 시대의 우파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들이 후대에 어떤우파의 유산들을 남겨주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세기 전환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프랑스 애국자연맹은 프랑스에서 최초의 우파 단체이자 프랑스 민족주의의 선구자적인 운동 단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애국자연맹은보불전쟁에서 독일에게 패배한 프랑스의 독일에 대한 ‘복수’를 요청하는 비당파적 민족주의 연맹으로 시작했다. 이 단체는 단 몇 주 만에 수 천 명의 지지자들, 그것도 공화파가 주류를 이루며 연맹의 회원으로 가입하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애국자연맹의 가담자들은주로 소규모 상인, 장인 및 노동자들로 구성되었다. 애국자연맹은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민족주의, 반유대주의, 포퓰리즘의 양상을 띠는 대중조직으로 변모했다. 몇 번의 변모를 거듭하다가 1905년경 전통적 우파의 다양한 흐름들에 흡수되어 버렸다. 1914년부터는 모리스 바레스가 수장으로 나서 애국자연맹의 부활을 꾀하였다. 바레스는 프랑스의 ‘신성한 단결(Union sacrée)’의 유지의 필요성과 함께 전쟁에서 필승의 신념을 유지하도록 프랑스인들을 독려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바레스의 사후엔 애국자연맹 내부에 분열과 조직의 약화를 겪게 된다. 둘째, 프랑스조국연맹은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1898년 12월 31일에 창립된 민족주의지향성의 프랑스 정치조직으로 반드레퓌스파 지식인들과 사교계 사람들이 결집한 조직이었다. ‘인권연맹( Ligue des droits de l'homme)’에 대한 반작용으로 세워진 프랑스 조국연맹의 목표는 이 단체에 모여든 조직원들의 구성만큼 잡다했다. 이종의 반드레퓌스파 세력들이 연대하여 조직된 단체였다. 애국자연맹과 달리, 이 단체는 엘리트 집단에 속하는 교수, 학자, 예술가들과 같은 계층들이 집결했고, 불랑제주의자들이면서 동시에 보나파르트주의자들도 이 단체에 모여들었다. 프랑스조국연맹의 엘리트주의적 민족주의는 반의회주의, 군국주의, 보다 신중한 형태의 반유대주의를 결합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셋째, 본 연구는 세기 전환기 프랑스 우파의 여론 정치에 대해 탐색했다. 이 시기에 급증하는 신문, 잡지, 출판물 등을 살펴본 결과 1881년 언론의 자유법의 출범으로 기술적인 발명들을 이용한 신문들은 제3공화국 하에 “제4의 권력”으로 인정받았다. 모든 정치적 스펙트럼을 표현하는 수십 개의 일간지들이 발행되었다. 이 우파적인 신문의 영향력은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민족주의적이고 포퓰리즘적 성향의 신문들과 온건 우파 성향의 신문들이발행되면서 저마다의 정견을 재생산하면서 대중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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