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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마은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저널정보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숭실사학 제38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319 - 35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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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그의 민족주의의 절정판이라 할 수 있는 제1차 세계대전기의 바레스의 민족과 민족주의의 성격을 검토하는데 목적이 있다. 전쟁은 바레스의 개인적 삶과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로 인해 그의 민족주의의 성격이 바뀌게 되었다. 전쟁을 겪으면서 바레스는 그의 민족 개념을 이전 시기와는 다르게 정의내리고 민족주의 프로그램을 새롭게 제시했다. 19세기 말, 1890년대에 그의 민족주의는 족류공동체적인 성격을 나타냈다. 즉 프랑스 내부의 단합을 위해 외부의 배제를 취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보수적이며 반유대주의적인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민족주의의 양상과 성격이 바뀐다. 즉 드레퓌스 사건 시기의 모든 정치적 분열과 대립을 초월하여 덜 당파적이며, 내부의 적이 아닌 외부의 적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이것은 한편으로 신성한 단결의 공화주의적 민족주의를 예고하면서 바레스가 민족적 화합의 논리로 조국을 예찬하는 불굴의 예찬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바레스는 ‘신성한 단결’을 부르짖으며 프랑스의 민족성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정신적 가족들의 단결과 단합을 외친다. 왜냐하면 프랑스에는 정신적인 다섯 개의 큰 가족들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도, 프로테스탄트교도, 유대교도, 사회주의자들, 전통주의자들이 그들이다. 이런 확인된 사실로부터 바레스는 그들의 고유한 신앙을 옹호하면서도 프랑스를 방어하는 젊은이들이 보다 아름다운 하나의 프랑스를 탄생시키기 위해 헌신하다고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바레스는 프랑스 민족을 구성하는 다양한 정신적 가족들이 조국의 위기 앞에 신성한 단결을 통해 민족적 화합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그의 민족주의는 일면 호전적이고 복수적인 양상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동화주의적이고 개방적이며 통합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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