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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만호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대동한문학회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제74권 제74호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259 - 287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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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수재 조태징은 진실한 학문과 독실한 실천을 추구한 인물로 명재 윤증의 문하에서 존경받았다. 그가 남긴 詩文, 그리고 그의 死後에 지인들이 애도의 뜻을 담아 지은 挽詩 및 祭文이 6권 3책의 『졸수재유고』로 간행되었다. 후인들은 졸수재를 文辭보다는 德行에 힘쓴 인물로 평가하였다. 평가가 대변하듯 그의 詩文은 화려한 수사나 독특한 발상의 문예적 특징보다는 투박하지만 교훈적이며 진솔함이 두드러진다. 문학적으로는 작품의 양과 질의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보기 어려운데, 권3에 수록된 <伸卞明齋先生被誣疏>는 조태징 본인의 師門을 위한 헌신, 『노서유고』 毁板의 顚末, 懷尼是非의 대응 논리 등의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글이다. 조태징은 그동안 학계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인물이기에 본고는 그의 생애와 학문을 먼저 소개하고, 그의 소장을 중심으로 師門 辨誣의 顚末을 고찰한 다음 졸수재의 소장이 가지는 의의를 살펴보았다. 회니시비는 1716년 숙종의 이른바 丙申處分을 통해 공식적으로는 일단락되었다. 尹宣擧 부자의 행적과 『노서유고』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申球가 상소하였는데 이 일이 병신처분의 발단이 되었다. 신구의 문제 제기에 대해 吳命峻, 嚴慶遂, 李弘濟 등이 옹호하자 숙종은 오명준 등의 주장이 옳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金昌集이 다시 반론을 제기하자 숙종은 입장을 바꾸어 『노서유고』의 훼판을 지시하였다. 이에 조태징이 同門들과 함께 소장을 지어 辨誣에 나섰으나 소장은 숙종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조태징은 의금부에 투옥되었다. 변무에 실패한 조태징은 이듬해 운명하였으며 실패의 한은 그의 시문뿐 아니라 지인들의 글에도 담겼다. 조태징의 변무 논리는 윤선거 부자를 옹호했던 사람들의 논리와 유사하다. 그러나 그는 보다 풍부한 근거 자료를 확보하여 정밀한 논리를 만들었다. 그의 논리는 앞 사람들의 주장에서 영향을 받은 동시에 후인들의 師門 옹호에 영향을 끼쳤다. 尹光紹의 소장에서 조태징이 사용한 표현이 그대로 원용된 점이 하나의 증거이다. 무엇보다 회니시비의 전말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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