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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차혜경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저널정보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동방한문학 제94호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139 - 17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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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 전우(1841∼1922)는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조선 유학사의 大尾를 장식한 巨儒다. 율곡학파 3백 년 학문 전통을 오롯이 지킨 학자로도 평가를 받는다. 당시 그만큼 학계의 重望을 받았던 이는 드물다. 그러나 그는 나라가 일제에 의해 병합을 당했을 때나 그 이후에도 의병을 일으키지 않는 등 대개 소극적인 저항으로 일관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오늘날까지 비판을 받고 있다. 당시는 나라가 망하고 道가 망해가는 중대한 판국이었다. 이런 비상시국이었기 때문에 전우에 대한 세상의 요구가 컸고, 그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우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달리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전우의 출처관에 대한 해명과 맞물려 있는 사안이다. ‘출처’란 사대부 선비가 각자 상황에 맞게 취할 수 있는 입장을 말한다. 전우는 암담한 현실세계를 떠나 옛 전통을 지키며 후일을 기약하겠노라는 ‘去之守舊’의 입장을 취하였다.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것보다 후진들의 교육과 자신의 학문에 힘쓰는 쪽을 택하였다. 급변하는 세태 속에서 도를 지킬 ‘儒學種子’를 심어 광복된 뒤의 일을 대비해야 한다고 보았다. 전우는 ‘量能度勢’, ‘量能度分’을 자신의 행동 강령으로 삼았다. 한 마디로 각자 자신의 분수와 능력을 헤아리고 시세를 판단하여 스스로 처리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전반적으로 배타적, 외골수적 성격이 강하면서도 출처관에서만큼은 단선적이거나 경직되지 않고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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