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경석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중국학회 중국학보 중국학보 제104권
발행연도
2023.5
수록면
115 - 140 (2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과학사가 존속과 폐지의 갈림길에 봉착하면서 몇 차례 간단치 않은 고비를 겪었음을 확인하였다. 첫째,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즉 정치권력의 교체가 이루어져 새로운 중국이 성립한 상황이었다. 둘째, 1950년 8월에 열린 中華全國自然科學工作者代表大會에서 科聯과 科普가 성립한 일이다. 셋째, 1951년 5월 우여곡절 끝에 과학 잡지를 정간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다. 넷째, 1957년 7월 과학 잡지의 복간이다. 다섯째, 반우파투쟁에 이은 정세의 전반적 ‘좌경화’이다. 이처럼 중국과학사는 여러 차례 존폐의 갈림길에 봉착하였고, 존폐의 두 가지 상반된 흐름이 교차하면서 10년 세월을 지냈다. ‘10년 존폐’의 과정은 복합적으로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경쟁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하나의 場이었다. “복합”이라는 데에 생각이 이르니 ‘10년 세월’이 달리 보인다. 언뜻 보기에는 ‘10년 만에’ 해체된 것 같지만 어찌 보면 ‘10년이나’ 유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요 과학자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 과학계를 주도하던 중화민국 시기의 대표적인 과학단체가 중국혁명의 성공과 중국공산당의 승리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자 ‘겨우 10년 만에’ 해체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후 당국이 각계 민간 영역에 영향력을 파급하면서 “대단결” 통합을 촉구하는 분위기였음에도 ‘10년이나’ 단체를 유지하였던 것은 어떤 연유가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10년밖에’ 존속하지 못했나, 아니면 ‘10년이나’ 존속했던 것인가? 어떻게 보든 이러한 양면성은 중국과학사의 마지막 10년을 둘러싸고 여러 측면에서 존속과 폐지의 흐름이 공존했기 때문이라고 가정해볼 수 있다. 예컨대 중국과학사 내부에 중국과학사의 미래를 둘러싸고 여러 주요 인사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졌을지 모른다. 어떤 인사는 어떻게든 중국과학사를 유지하고자 했고, 어떤 인사는 해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부의 이런 이견이 ‘10년 존폐’의 복합성을 낳았다. 당시 주요한 과학단체 사이에도 존속과 폐지의 분화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1950년 8월 전문 학회를 아우르는 科聯이 성립했을 때 집중적으로 불거졌다. 왜냐하면 科聯이 기존의 종합 성격 과학단체를 대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떤 단체는 科聯의 성립을 명분으로 즉시 해산을 선언했고, 어떤 단체는 科聯의 성립에도 불구하고 계속 존속하려 했다. 어떤 요인이 이러한 분화에 작용했을지 궁금한데, 아무튼 과학단체들 사이에 있었던 서로 다른 대응이 중국과학사의 ‘존폐 10년’에 영향을 끼쳤고, 또 역으로 영향을 받기도 했다. 중국과학사 내부와 과학단체 범주를 넘어, 시야를 과학자 지식인사회 전반으로 확대해도 중국과학사의 존폐와 맥락을 같이하는 서로 다른 흐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957-58년 반우파투쟁과 대약진운동으로 상징되는 ‘좌경화’한 정세 가운데 관련 움직임이 없었는지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술했듯이 반우파투쟁에 이은 정세의 전반적 ‘좌경화’가 결국 1960년 5월 중국과학사의 최종 종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