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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구사회 (선문대)
저널정보
국어국문학회 국어국문학 국어국문학 제204호
발행연도
2023.9
수록면
127 - 161 (35page)
DOI
10.31889/kll.2023.09.20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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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암영언』은 순조 26년(1826)에 충남 아산에서 나온 직암(直菴) 조태환(趙台煥, 1772〜1836)의 시조집이다. 이것은 조태환의 시조 184수와 가사 2편 이외에도 그를 따르던 정덕유(鄭德裕, 1795〜1829)의 화답시조 12수와 이석빈(李碩彬, 1795〜1832)의 화답시조 10수가 덧붙여진 형태이다. 여기 206수의 시조와 가사 2편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작품이다.
조태환의 시조는 작자가 국내를 유력하며 지은 기행시조가 100여 수에 이르면서 질량을 압도한다. 다음으로 도학시조와 교훈시조, 은일시조로 이어진다. 그리고, 『직암영언』에는 아산 인근의 지명을 따서 지은 〈죽계별곡〉과 〈연산별곡〉이라는 조태환의 가사 2편이 수록되어 있다. 둘 다 유교적 강상 윤리를 담고 있는 교훈가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 가사 작품은 둘 다 교훈가사인데, 향촌 사회보다는 가문구성원을 대상으로 오륜 문제를 설파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정덕유는 「근화직암영언(謹和直菴永言)」이라는 편명으로 화답시조 12수를 남겼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직암의 사람됨이나 품성을 시작으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하고 있었다. 그의 시조에는 조선후기 성리학이 보여준 심성이나 수양 문제가 주로 다뤄지고 있었다. 한편, 그는 ‘孔孟程朱, 靜退栗尤’로 압축되는 도학적 계보를 추종하는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석빈은 「제직암영언(題直菴永言)」이라는 편명으로 직암의 시조 141수에 대하여 10수의 시조로 화답하였다. 이석빈의 화답 시조 10수는 대부분이 도학 시조로써 직암의 도학 세계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화답 시조는 『시경』의 시 분류 방식인 육의(六義)의 ‘부비흥(賦比興)’을 사용하는 특징이 있었다.
『직암영언』의 자료적 가치는 19세기 사대부 시조와 관련을 지었다. 조태환의 시조집인 『직암영언』(1826년)은 조황(趙榥, 1803〜?)의 『삼죽사류』, 이세보의 시조집(1870년 전후)와 더불어 19세기 3대 사대부 시조집으로 규정하였다. 한편, 『직암영언』은 조선후기 호서지역에서 존재했던 지역 문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직암영언』의 서지(書誌) 및 편집 과정
3. 『직암영언』의 편제와 내용
4. 자료적 가치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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