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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市 大樹 (日本 大阪大学)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동서인문 동서인문 제22호
발행연도
2023.8
수록면
241 - 274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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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에서는 작은 단편과 삭설까지 합쳐 50만 점 가까운 목간이 출토됐다. 그 중 70% 이상은 고대 목간으로 7세기 후반부터 8세기 말까지의 시기에 특히 집중된다. 이 100여 년은 율령제를 바탕으로 국가 구조가 갖춰지고 전성기를 맞은 시대였다. 율령국가는 철저한 문서주의를 특징으로 하며 각종 문서(광의)의 작성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이들은 종이 문서를 정식화하였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형태로 목간도 많이 사용되었다. 반면 구두 전달도 일정 비중을 차지했다.
본 보고에서는 이상의 사항을 바탕으로 문서목간(협의) 전개과정에 대해 검토한 것이다. 각종 문서의 양식을 규정한 대보공식령(701년 시행)이 큰 획기로 인정됨에 따라 7세기와 8세기를 나눠 검토해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을 주장했다.
7세기는 상신목간의 사례가 매우 많다. 그것을 대표하는 것이 「전백목간」이며, 행선지는 서두에 쓰여지는 경우가 많다, 행선지는 지위·존칭·관직이 일반적이다, 발신은 종종 생략된다, 날짜는 거의 쓰여지지 않는다, 라고 하는 특징이 인정된다. 전백목간이 구두전달과 깊이 관련된 것은 틀림없으나 연원은 중국 육조시대의 문서형식에 있고 직접적으로는 한반도로부터의 영향도 강하게 받고 있다. 전백목간에 한하지 않고 상신목간은 구두로 간단하게 의뢰할 수 있는 경미한 내용의 것이 적지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문자화한 점에서 의의를 보인다. 한편 하달 사항의 경우에는 경미한 내용은 구두 전달만으로 끝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7세기 사례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8세기에 이르러 대보공식령의 영향으로 관사간의 통속관계를 바탕으로 작성되는 ‘解’, ‘符’, ‘移’ 등의 서식에 기초한 문서목간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서식을 규정한 것으로는 서의도 존재하고 있으며, 서장으로서의 멋이 강한 문서 목간도 여러 개 보인다. 이 밖에 召, 請, 進 등 일정한 서식을 가진 목간도 7세기부터 계속 존재해 왔다. 전체적으로 7세기 단계와 비교하여 목간에 적어야 할 정보량이 증가하기도 하여 문자의 할당을 의식한 목간을 많이 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여 목간의 문자화가 진전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방사회에서는 거대한 군부목간이 사용되는 등 목간의 크기에 따라 권위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결론으로서 문서목간의 배후에는 인간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을 밝혔다.

목차

국문초록
1. はじめに
2. 画期としての大宝公式令
3. 7世紀の文書木簡
4. 8世紀の文書木簡
5. おわりに
参考文献
日文提要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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