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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옥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탐라문화 탐라문화 제52호
발행연도
2016.6
수록면
163 - 189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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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순천에 수군절도사가 파견된 것은 15세기이다. 당시 왜구 침입으로 인한 피해가 순천해역에서 속출하였기 때문이다. 15세기 왜구는 두 갈래 바닷길을 따라 조선 해역으로 몰려왔다. 하나는 대마도(對馬島)에서 거제도(巨濟島)를 경유하여 고초도(孤草島)에 이르는 바닷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일본 오도(五島)에서 손죽도(損竹島)?선산도(仙山島)를 경유하여 가리포(현 완도)로 들어왔다. 이런 까닭에 전라도는 조선 명종 10년(1555)에 을묘왜변을 비롯하여, 선조 20년(1587)에 정해왜변, 그리고 임진왜란에 이어 정유재란까지 장기간 전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전라도의 해양방어체계가 대폭적으로 개편된 것은 조선 숙종 7년(1681)이다. 이 때 전라도 수군은 수영(水營)을 중심으로 좌도와 우도로 편제되고, 그 예하에 첨사진(僉使鎭)?만호진(萬戶鎭)?별장진(別將鎭)이 배치되었다. 17세기 전라좌수영은 군산의 위도(蝟島)에서부터 여수의 오동포(梧桐浦)에 이르기까지 5관(순천?낙안?보성?광양?흥양) 5포(방답진?사도진?여도진?발포진?녹도진)를 관할하였다. 그 후 19세기에 전라좌수영 관할로 장흥의 회령포진과 순천의 고돌산진이 복설되면서 6관 7포를 관장하였다. 1831년에 작성된 『군정성책』에는 전라좌수영 소속 순천부 4개 면(여수면?도리면?해촌면?별량면)의 군정과 군관 명단이 수록되어있다. 분석 결과 전라좌수영 소속 순천부의 군정은 정병(正兵)?수군(水軍)?보미(保米)?병장(兵匠)?봉군(烽軍)?수용(需用)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들의 연령은 25~57세였다. 이 가운데 정병의 평균 나이는 44세, 수군은 42세였다. 조선후기 전라좌수영 소속 군정 수는 큰 변동 없이 장기간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순천부 여수면 군정수의 경우, 1759년에 중앙정부가 제작한 『여지도서』(1759)에 총 136명이 수록된 반면, 1831년에 순천부에서 작성한 『군정성책』에는 144명이 등재되어 대동소이하였다. 그 후 고종 31년(1894) 갑오경장 때 조선의 모든 군사 업무가 중앙 행정 부서인 군무아문(軍務衙門)으로 일원화되면서 전라좌수영을 비롯하여 예하 수군진이 모두 혁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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