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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하정숙 (동방문화대학교대학교)
저널정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문화와예술콘텐츠연구소 문화와 예술연구 문화와 예술연구 제10권
발행연도
2017.12
수록면
111 - 139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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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도가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을 지었던 당나라 말기는 환관의 전횡과 당쟁, 그리고 농민의 봉기 등으로 국정이 혼란한 시기였다. 그러나 그는 50여세부터 은거하여, 승려나 인사들과 시를 지으며 편안한 생활을 하였다. 당 제국이 망하자 그는 국가와 군주를 생각하며 부흥하기를 원했으나, 그것도 마음 뿐 ‘은일’과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따라서 사공도의 시학관은 나라를 사랑했지만, 갈등하며 출사하지 않고 시로서 자신의 마음만을 달랬다. 이런 이중성을 가진 사공도는 시가를 수준 높은 경지까지 끌어올릴 수 없었다. 사공도의 『시품』은 사언 고시체로 ‘웅혼’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유동’으로 끝을 맺는다. 각각의 구성은 4언 12구 48자 운문으로서 원문은 전체 1,152자로 이루어져 있다. 『시품』의 24개의 풍격이 계절과 절기와도 관계가 있으며, 체제에 있어서는 무체계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시인들은 작법에 의해 그들의 생활과 사상을 다루고 있다. 또한 24라는 숫자가 이십사산(二十四山), 이십사상(二十四相) 등 도교와 관련되었다하여 대부분의 학자들이 『시품』을 도가적 미학으로 논하고 있다. 원교 이광사는 왕족의 후손으로 종형제들과 성장하며 유·불·도를 공부하였고, 상고당 같은 지인을 만나 비문, 골동품, 서예책 등을 통하여 지식을 쌓아 나갔다. 또한 21살에 서예의 스승 윤순(尹淳)을 만나, 조선 18세기 최고가는 시인· 화가· 서예가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이십사시품서화첩』에 정선이 그림을 그리고 이광사가 글씨를 쓰게 되었다. 글씨는 현재 비록 6편은 산실되었지만 18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있다. 각 『시품』의 24풍격에 맞는 서체로 형상화하여 썼다. 그리고 서른 무렵에 하곡 정제두로부터 조선 심학을 배웠다. 이 때 배웠던 심학이 한평생 그의 인생의 철학이 되었고 그의 집안 전주이씨 덕천군파 학문으로 계승되었다. 50여세부터 유배지 함경도 부령과 신지도에서 그는 ‘도(道)’에 정진하면서 저술하였던『두남집』,『원교집』『서결』등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원교체’가 동국진체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원교는 『시품』의 첫 구절인 ‘웅혼’을 조선심학(하곡학)으로 “이 우주에서 가장 힘세면서도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은 태양이다. 태양이 태허의 원기(元氣)에서 태어났던 것처럼 사람도 태허로 되돌아가서 근본적인 양기를 얻어야 한다. 원기를 얻으려면 수양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황도의 중심은 해에 끈을 묶어놓은 것처럼, 너무 멀리 떨어지거나 가깝게 오지 않도록 일정한 궤도에 따라 돌리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과 몸을 억지로 꽉 잡아도 안 되고 쥐는 듯 놓는 듯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이처럼 수양하면 끝이 없을 만큼 크고 넓게 될 것이다. 라고 이광사는 이해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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