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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찬기 (목포대학교) 이영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비교일본학 비교일본학 제53권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209 - 226 (18page)
DOI
https://doi.org/10.31634/cjs.2021.5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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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년 조선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한 조선 학사들은 약 백여 명의 일본 한문 지식인들과 필담?창화를 나누었다. 미즈타리 야스카다도 그중 한 사람으로 구마모토로부터 아버지를 따라온 13세의 소년이었다. 헤이잔이 아들의 자와 호를 부탁하자 신유한은 하쿠센이라는 호와 사립이라는 자를 명명해주었다. 야스카다가 하쿠센이라 불리게 된 것은 이후의 일이다. 구마모토 출신의 소년 학사가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신유한을 비롯한 조선학사들과 시문 증답을 나누고 나서부터의 일이다. 후일, 하쿠센의 아비 헤이잔은 이 한시 증답의 내용을 정리하여 오규 소라이에게 보이고 서문을 청했다. 소라이는 하쿠센의 한시를 높이 평가하고 「시문 경쟁」에서 조선의 학사를 능가하고 있다고 극찬하였다. 이것에 대하여 필자는 조선 학사와 하쿠센의 증답시 평가를 위해 평측、출전 등을 확인하고 분석해 보았다. 즉 오규 소라이에 의하여 하쿠센의 한시가 조선 학사의 작시보다 높게 평가된 이유, 상호 시풍의 상이함으로 인한 평가의 편파성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하쿠센의 작시가 조선 학사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한 근거는 무엇일까? 그리고 과연 그렇게 받아들여도 좋은 것인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검증하였다. 즉, 1719년 9월 4일、오사카의 서본원사에서 행해진 제술관 신유한을 비롯한 서기들과 하쿠센 부자가 나눈 친선우호적인 「화(和)」의 장면이, 2년 후에 기술된 오규 소라이의 평가에 의한 서간문으로 인하여, 일본 고문사학을 선전하는 도구로 이용되었고 ,「시문 경쟁(文競)」의 장면으로 전환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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