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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효신 (대구가톨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이탈리아어문학회 이탈리아어문학 이탈리아어문학 제64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1 - 46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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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삶과 페트라르카의 삶 속에서 그들의 문학이 갖는 힘을 생각해 보자. 그들의 삶의 정치적 행보와 현실을 헤쳐나가는 모습은 한 사람의 능동적 정치성, 또 다른 한 사람의 수동적 정치성과 상관없이 얼마나 일관되며, 흔들림이 없는가를 말이다. 각자 자신들만의 삶의 패러다임에 따라서 묵묵히 때로는 절규하듯 작품 속에서 외쳐대는 그들의 문학은 반세기 동안 유럽을 흔들어댔고, 700년 동안 전 세계를 흔들어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활동적인 삶에 비중을 두었던 단테의 경우나, 그리고 명상적 삶에 비중을 두었던 페트라르카의 경우 둘 다, 속어 이탈리아어로 된 작품이 가장 생명력이 길고, 호응도도 높았다는 사실이 공통점이다. 문학의 가치와 중요성, 그리고 정치적 삶의 이력을 보더라도 단테를 속어 문학인으로 폄훼한 페트라르카 역시도 속어 문학인이 되어 있었다. 정치적 삶의 비중에서 비교해볼 때, 단테는 책임감이 많이 주어지는 직책과 고향 피렌체에 얽매여 있었고, 그것을 선호했던 반면, 페트라르카는 책임감이 적게 주어지는 상대적으로 작은 직책에 만족하고 피렌체에 얽매이지 않고, 홀로 자유롭게 명상과 여행하기를 선호했다. 단테는 유배 직전에 그리고 유배 직후에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선호하는 것이기에 기회에 편승하여 정치 활동을 했다. 그리하여 교황과 갈등을 벌이는 과정에서 그의 동맹이 되어 줄 만한 세력을 있는 대로 받아들였다. 페트라르카는 외교 사절로 활동하기는 했지만, 일선 정치 행정가로 일하지 않았고, 후원자의 정치적 색깔에 좌지우지되지 않았으며, 자유롭게 오로지 자신의 신념과 사유에 매진할 수 있었던 새로운 형태의 지식인이었다. […] 젊은 시절 일찍이 얻은 명성으로 여러 군주의 궁정으로 초대되어 문객으로 있었지만, 공직을 얻어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학문을 하기 위해 그들의 비위를 맞출 필요성이 없었던 페트라르카는 당대 최고의 학자를 집안에 두는 자부심을 군주들에게 선사할 뿐이었다. 공적 사적 여행을, 다양한 지식인을 만나고 자신의 견문을 넓히는 한편 사라진 라틴어 원전들을 찾아다니는 기회로 삼았다. 페트라르카의 방랑은 정치적 당파 싸움에 휘말려 유배에 처해 죽을 때까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이 떠돌아다녀야만 했던 단테의 유랑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단테는 중세 시대의 인물인 동시에 중세를 마감하는 인물이 되고, 페트라르카는 르네상스를 시작하는 인문주의자가 된다. 그래서 단테는 중세와 근세를 잇는 인물이고, 페트라르카는 르네상스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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