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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철웅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동양학 동양학 제68호
발행연도
2017.7
수록면
135 - 152 (1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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蒙元 제국 내에서 위구르, 회회 등 색목인의 역할은 매우 두드러졌다. 원 성립 이후에는 많은 색목인들이중원으로 이주하였다. 이에 고려는 蒙元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히 색목인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張舜龍, 閔甫, 崔老星, ?遜·?長壽, 李玄 등은 고려에 정착한 대표적인 색목인들이다. 張舜龍, 閔甫, 崔老 星, 李玄 등은 고려와 원이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한 충렬왕 때에 고려로 이주하였다. ?遜·?長壽는원·명 교체기에 이주한 색목인이다. 이들 색목인은 고려 관료로서 주로 외교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그리고이주 색목인 중에는 상인들이 많았다. 고려 사회에 ‘回回家’가 존재했으며 고려가요 「雙花店」에는 ‘回回아비’가 등장한다. 이들 색목인들은 원 간섭기에 고려에 정착하여 상업 활동에 종사하였다. 특히 색목인 崔老星은 富商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는 고려에서 상업과 무역에 종사하던 大商人이었을 것이다. 고려에 이주한 색목인 상인들은 대부업, 도축업, 그리고 일반 상업에 종사하였다. 이들은 특별히 고려 사람과 구분되는 곳에 거주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들은 개경 시전에서 일반 백성과 어울려 살며 장사하였는데, 때로는 왕실과 거래한 상인도 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습속을 지켜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즉 고려의무슬림들은 변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몽골인과 색목인의 이주로 인해 고려에서는 축첩이 문제가 되었다. 그들이 가진 축첩의 습속으로 인해 고려 사회에 문제를 야기하였던 것이다. 한편 몽원 시기에 위구르문자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고려에서도 위구르문자를 아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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