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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용구 (인천도시공사)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92輯
발행연도
2019.10
수록면
79 - 11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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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辰王’의 실체 파악보다 관련 사료의 기초적인 정리와 이해를 도모한 것이다. 그 내용은 『삼국지』한전의 辰王이 마한과 진한에 並載된 이유,『후한서』의 진왕은 어떻게 삼한 전체의 지배자로 묘사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연구 방법은 두 사서 모두 오랜 기간 필사본으로 유전되고, 반복되는 刊刻으로 인한 자구변화에 유의하였다.
첫째, 『삼국지』진한전의 3차례 연속된 ‘辰王’ 표기는 陳壽 저술 당시에는 없었으며, 필사본 流傳되던 南宋 이전의 字句異同의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진한의 진왕 기사는 현행본 『삼국지』한전이 유일하기 때문이다.『후한서』를 편찬한 范曄이나, 裴松之가 『삼국지』에 注記 할 때도 ‘진한의 진왕’ 표기는 없었다는 생각이다. 陳壽의 본래 표기도 ‘辰韓’ →‘辰韓人’(혹은 ‘辰韓王’)→‘辰韓’이라 보았다.
둘째, 『후한서』는 78개 삼한의 小國 마치 대표인양 ‘伯濟國’ 하나만을 특기하였다. 『후한서』의 찬자 范曄이 살았던 5세기 전반은 백제가 東晋 이후 劉宋代까지 南朝와 통교한 유일한 정치체였다. 당시 백제는 4세기 후반 이래 북으로는 郡縣故地로부터 남부의 가야와 전라도 지역까지 통합한 새로운 지배자로 군림하였다.『후한서』의 辰王像은 마한에 기반한 ‘三韓의 지배자 百濟’라는 范曄의 현실인식이 투영된 결과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진왕’ 기사의 유형과 추이
Ⅲ.『삼국지』의 전존과 ‘진왕’
Ⅳ.『후한서』의 辰王觀과 백제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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