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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형섭 (首爾大學校)
저널정보
한국중국소설학회 중국소설논총 중국소설논총 제52호
발행연도
2017.8
수록면
59 - 85 (27page)
DOI
10.17004/jrcn.2017..5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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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남경이라는 도시에 초점을 맞추어 18세기 중국 소설인 吳敬梓(1701-1754)의 《儒林外史》를 분석해 보려는 목적에서 쓰여졌다. 오경재는 안휘성 全椒縣 출신으로 雍正11년(1733) 33살 때 남경으로 이사한 후, 줄곧 그곳에서 살다가 54세 때 揚州에서 病死한 후 남경에 묻혔다. 생애 중후반 20년 남짓 살았던 남경은 그에게 있어서 제2의 고향이자, 고향보다 더 사랑한 도시였다. 《유림외사》 속에는 고향에서의 경험과 세태, 가문과 繼父에 대한 기억 등 그의 일생이 곳곳에 녹아져 있지만, 특히 남경이라는 도시 공간, 그곳에서 교류하며 만났던 많은 사람들, 주변 도시에 대한 여행의 경험 등이 중요한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 먼저, 《유림외사》의 전체적인 공간적 배경을 분석해 보면, 대체로 ‘江南’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江南 중에서 다시 ‘남경’이라는 도시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먼저 20년 넘게 남경에 살면서 경험한 것들을 작품 속에 반영한 결과이다. 다음으로 명청 시기 강남의 특별한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당시 강남은 단순한 지리적 개념을 넘어서서 풍요로운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문화적 우월감을 내포하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유림외사》에서 북경이 정치와 권력의 중심지로 그려져 있다면, 남경은 이와 대조적인 가치와 지향을 상징하는 재야 사인들의 중심도시로 그려져 있다. 《유림외사》는 오경재가 살았던 18세기 당시 청조 사회, 타자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강남 士人들에 대한 愛憎의 감정이 투영되어 있다. 다음으로, 《유림외사》 속 남경은 크게 자유롭고 개방적인 성격의 문화도시, 흥망성쇠의 역사를 표상하는 도시, 市隱들의 안식처로 그려져 있다. 남경에 대한 긍정적 묘사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이미지는 활력을 잃고 점차 세속화되어 쇠락해 가는 도시로 묘사되어 있다. 남경에 대한 이런 이미지는 우선 청조가 들어선 후 남경의 위상 변화와 관련이 있다. 永樂帝의 북경 천도 이후에도 兩京 제도 하에서 명대의 남경은 여전히 留都로서 방대한 지역을 관할 통제하는 정치적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의 중심도시였다. 청조를 세운 만주족은 남경을 점령한 후 留都로서의 지위를 박탈하고 江寧府로 격하시켰다. 또한 강희?건륭제 시기에 진행된 강남 士人에 대한 다양한 회유 포용 정책으로 그들의 응집력과 자부심도 점차 약화되어 갔다. 그와 함께 남경이라는 도시의 정치, 학술, 문화적 위상과 의미도 점차 희미해져 갔다. 《유림외사》에 묘사되어 있는 남경 이미지 속에는 상술한 것과 같은 복합적인 상황과 맥락, 의미가 투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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