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유리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민족문학사연구소 민족문학사연구 민족문학사연구 제77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141 - 172 (3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연구는 조선본 『須溪先生批點孟浩然集』을 통해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서적 교류의 일면을 살펴본 것이다. 孟浩然은 唐代의 문인으로, 그의 문집은 서목을 통해 당대에 이미 유통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元代까지 이 책이 여러 텍스트로 수용되고 있었음을 기록과 현전본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데, 劉辰翁이 평점을 단 『수계선생비점맹호연집』도 그중 하나이다. 그러나 유진옹 평점본의 원판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명대에는 주로 총서로 간행되었으며, 체제와 분류 방식도 보다 다양해진다. 조선에서는 1445년 남원에서 처음 간행되었는데, 체제와 수록 내용, 서지적인 부분 등 원판본의 원형을 유추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조선에서는 남원본이 간행된 이후 16세기까지 갑진자본으로 중간되는데, 남원본을 필사하여 소장한 경우도 보인다. 이 두 종의 서적은 임진왜란으로 일본에 유출되어 大名와 지식인층에게 소장 및 필사되었고, 17세기 후반에는 교토에서 상업 출판으로 간행되는 바와 같이 다양하게 수용된다. 특히 필사 방식으로 수용한 林羅山은 남원본을 등사하였는데, 교감주를 통해 다른 간본을 가지고 교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석의 내용과 남원본 및 명판본 4종과 대조한 결과, 그가 참고한 서적을 특정하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조선본 및 그 계통본과는 다른 체제의 명판본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일본에서는 長崎를 통해 강남 지역에서 중국본이 직수되어 유통되고 있었고, 관련 명판본이 막부와 林羅山의 아들인 林?峯 등에게 소장되고 있었다. 따라서 林羅山은 당시 일본에 함께 유통되고 있던 조선본과 중국본을 함께 수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和刻本 역시 남원본을 저본으로 하고 있으나 林羅山 필사본과는 관련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18세기 이후에는 중국본으로 새롭게 간행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