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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차서연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이은주 (안동대학교)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한국복식 한국복식 제48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5 - 30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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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주자(朱子, 1130~1200)가 만년에 착용한 야복(野服)의 의미와 조선에서 제작해 입은 야복의 의미, 형태와 구성을 고찰한 것이다. 야복은 본래 ‘야인(野人)의 옷’이라는 의미였으나, 주자는 만년에 예복 겸용의 일상복 일습을 ‘야복’이라 이름하였다. 상의(上衣)ㆍ하상(下裳)ㆍ대대(大帶)ㆍ방리(方履)의 4가지로 이루어진 야복을 편리함과 풍속의 교화라는 이유로 주자가 착용하였는데, 형태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조선의 학자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주자가 입었다는 상의ㆍ하상 야복에 근거하여 심의(深衣)와 상복(喪服) 제도를 기준으로 ‘야복’ 형태를 제안하였다. 야복의 상의는 심의 제도를 인용해 만들었으나 단추로여미도록 하여 차이를 두었다. 하상은 상복의 하상 제도를 따라 만들고, 야복의 하상 도련에는 상복의 하상에는 없는 검은색 가선을 추가하였다. 관모는 치관(緇冠)과 복건(幅巾)을 쓰고 대대는 백색 바탕의 신(紳) 부분에 검은색 가선을 둘렀으며 신발은 흑리(黑履)를 착용하였다. 조선에서는 주자를 따라 일상복과 의례복의 용도로 야복이라는 옷을 착용하였으나 주자가 착용한 야복의형태를 알 수 없었기에 심의와 상복을 참고하여 만든 것이다. 주자의 야복보다는 다양한 의례복 용도로 활용하여 빈객을 만날 때는 물론, 제사나 사당의 출입 또는 상중에 출입할 경우에 야복을 입기도 하였다. 빈객접대를 위한 의례복 용도에 더하여 다양한 경우의 의례복으로 용도를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조선 야복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아울러 야복의 유물이 없어 정확한 형태를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기록으로만 존재하던 조선의 야복을 권상하(權尙夏, 1641~1721) 초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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