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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심경보 (경기문화재단)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38號
발행연도
2019.8
수록면
197 - 223 (27page)
DOI
10.14769/jkaahe.2019.08.38.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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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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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 후기에 널리 제작된 심의초상을 노론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의례론과 도통계승의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심의(深衣)는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옷으로『禮記』와『家禮』를 통해 유학자의 상징처럼 인식되었다. 심의초상(深衣肖像)은 이 심의와 부속 의복을 입은 사대부를 그린 초상이다. 조선의 노론 사대부들은 ‘직령심의’로 대표되는 형식의 심의와 이를 그린 심의초상을 통해 송시열 이래의 학문과 도통계승의 의의를 밝히고자 하였다.
심의를 입은 유학자의 초상은 고려 말에도 그려졌지만 본격적인 ‘심의초상’의 의의는 17세기 후반에 송시열(宋時烈)에 의해 정립되었다. 송시열은 심의초상을 통해 공자에서 주희로 이어지는 성리학의 학통을 상징하고, 「가례」의 일상화란 의의를 내보이고자 하였다. 이후, 당대 山林의 종정으로 송시열은 노론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생전에 남긴 초상과 영초를 바탕으로 송시열 초상과 심의도상이 후대에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 노론의 정치적 갈등이 반복된 18세기 전반에는 송시열의 직계 문인들에 의해 ‘송시열과 심의’에 대한 의의가 심화되었다. 이후 권상하를 비롯한 송시열의 문인들도 심의를 입고 초상을 제작하여 학통의 의의를 이어가고자 하였다. 특히 이 시기 노론과 진재해와 진응회 부자간의 관계는 사대부들의 사상과 정치를 당위적으로 뒷받침하였던 명분론이 사대부-화원의 관계로까지 확장되어 갔음을 보여준다. 18세기 후반에는 송시열 초상의 이모와 전승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노론 내에서도 송시열 이후 사상적 분화와 명분론의 계승 등의 의미가 초상에 계속 투영되었다. 호론과 낙론의 사대부들은 자당과 가문의 의의를 초상에 담고자 했다.
본 논문은 조선 후기 노론계 사대부들을 중심으로 제작된 심의초상에 담긴 사회적 의의를 찾고자 한다. 이를 통해 조선의 다채로운 초상 문화를 좀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목차

Ⅰ. 심의의 기원과 의미
Ⅱ. 심의초상 형성과 심의제도
Ⅲ. 송시열의 심의초상과 도통의 계승
Ⅳ. 노론과 두 화원
Ⅴ. 노론의 분화와 심의초상의 확대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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