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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82호
발행연도
2022.3
수록면
341 - 37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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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이루어진 전기 동래읍성 고고학적 조사 결과 세종 28년(1446) 축조된 동래현성은 규모와 축조수법에 있어 조선 전기 연해읍성 성곽프로세스를 충실하게 이행한 것으로 파악해 볼 수 있다. 반면에 1731년에 축조되는 후기 동래읍성은 구조와 규모, 체성 축조수법, 부대시설 설치유무 및 축조수법 등이 전기 동래읍성을 포함하여 조선 전기 연해읍성과는 다른 성곽프로세스가 확인되고 있다. 즉 다른 성곽프로세스는 우선 후기 동래읍성을 포함한 17세기 이후 축조 되거나 개축된 부목이상 읍성 성둘레는 10,000척을 상회하는 것이 특징이다. 후기 동래읍성 체성 기단 축조수법 역시 전기 읍성에서 확인되는 지정목 위에 잡석지정하는 수법과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또한 규형(圭形) 체성, 성석 그렝이질, 규격화된 가공성석을 사용하는 성곽축성프로세스는 “도성이어처” 뿐만아니라 후기 동래읍성에서도 확인된다. 이것은 임진왜란 이후 잔존하는 왜성에서 일정부분 영향을 받은 것은 확실하고, 그 이면에는 서양성곽에서 영향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17세기 이후 성곽프로세스 신경향이 군사적, 행정적 상위단위인 부·목(府·牧) 등에 확산이 일부 이루어졌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경향의 적용은 일부 상위 행정단위에 한정적이었다. 규모와 형태로 볼 때 후기 동래읍성 치성 중 방형치성은 조선시대 전기간 동안 계속 축조된 것으로 파악해 볼 수 있다. 후기 동래읍성 체성과 해자사이 거리가 45m로 확인된 것은 해자와 체성 축조시기 차이에 기인한 것이며, 동래부사접왜사도(東萊府使接倭使圖)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후기 동래읍성에 해자가 축조되지 않거나 혹은 전기 동래읍성 해자를 배수로로 사용하였다는 견해는 제고되어야 할 것이다. 후기 동래읍성 해자는 조선 전기읍성 해자보다 깊이가 얕고 해자 내 교량시설 하부구조가 확인된다. 또한 전기와 후기에 걸쳐 성문 주위뿐만 아니라 곳곳에 목재교량이 설치되어 있다. 후기 동래읍성 해자에서 목익 흔적이 확인되어 조선 후기에도 계속 설치되고 있다. 따라서 후기 동래읍성은 조선 전기 읍성과 비교하여 구조 및 규모, 부대시설 등에서 그 유형을 달리하는 것으로 16세기 이후 조선 성곽 축조 신경향이 도입된 지역거점성곽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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