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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동재 (공주대학교)
저널정보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동방한문학 제93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297 - 334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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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우리나라 역대 문인들이 지은 백제 회고 한시의 현황과 내용, 문학사적 특징을 파악하려는 연구의 일환으로서, 17세기 문인들이 지은 백제 회고시를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백제 회고시는 백제사와 관련된 유적지를 찾아가서 백제사와 관련된 유적, 인물, 사건 등을 소재로 하여 지은 시를 말한다. 17세기 백제 회고시는 郭說 등 34명의 문인이 지은 64제 86수의 시가 있다. 17세기 백제 회고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작가 군의 다양화이다. 이전 시기에는 작사자가 주로 충청관찰사 등 관원이었으나, 17세기에는 작시자가 충청도관찰사 등 관원이 17인이고, 나머지 17인은 현직 관료가 아닌 민간인 신분이거나 부여에 살았던 지역민이었다. 이는 17세기 후반에 경제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유람에 대한 분위기가 커지고 여기에 동참하는 문인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둘째, 시 형식의 변화이다. 17세기에 지어진 백제 회고시 86수 가운데 5언 절구와 7언 절구가 50수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회고시는 주로 왕조의 개국과 몰락 등을 중심 소재로 삼기 때문에 서정성보다는 서사성이 더 강하여 배율시나 고체시로 작시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17세기에 지어진 백제회고시는 주된 정조가 무상감인데, 이는 개인의 서정을 읊은 것이다. 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집단성 보다는 개인의 의지, 사유가 중시되는 분위기로 점점 변해가는 것을 시사해 준다. 셋째, 작시의 공간과 시의 소재로 백마강의 활용이 많아졌다. 17세기 백제회고시 가운데 백마강을 소재로 한 시는 86수의 시 가운데 50수를 차지한다. 이는 부여를 유람하는 방법이 배를 활용한 유람이 많아진 것도 한 가지 이유이지만, 주된 이유는 시의 주된 정조인 무상감을 물을 통해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백마강은 백제사를 기억하는 하나의 매개체로서, 또는 때때로 역사 그 자체로 상징화된 공간으로서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넷째, 무상감과 무관심 정서가 심화되었다. 17세기 문인들에 의해 지어진 백제 회고시 가운데 무관심이나 무상감을 드러낸 시가 86수 시 중 76수로 88%를 차지한다. 17세기는 정치세력의 극한 대립으로 인해 문인들은 당대 현실에 대한 문제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었고, 역사적인 관심도 현저하게 줄어들게 되었으며, 당대의 현실과 거리가 먼 역사의 무상감만 드러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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