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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정현 (동북아역사재단)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36호
발행연도
2022.2
수록면
279 - 31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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陸徵祥(1871-1949)은 청(淸)말 외교관에서 중화민국 외교총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후, 벨기에 브뤼헤 소재 베네딕도회 성 안드레아(Abbey Saint-Andrew’s, Bruges) 수도원에서 종신서원을 한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총리출신 수사 신부이다. 그는 중화민국 외교총장 임기동안 외교인재를 배양하는 체계를 수립하여 중국 외교를 현대화하는 기초를 세웠다. 袁世凱 총통의 강요로 일본과 21개조 조약을 맺고 국민의 지탄을 받았으나, 1919년 파리평화회담에서 베르사이유조약 서명을 거절한 그의 결정은 21개 조약에 서명한 과오에 대한 명예회복을 이루었다. 陸徵祥이 관직을 떠난 이유는 단지 속세를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며, 그는 수도원에서 다른 방법으로 구국활동을 하였다. 1927년 7월 벨기에 성 안드레아 수도원에 들어간 그는 청빈 고행의 수행을 하였다. 그가 베네딕도 수도원을 선택한 동기는 유럽의 정신 역량인 가톨릭정신을 흡수하여 중화민족의 부흥을 실현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는 수도원에서 중국의 정치·사회와·교회가 처한 상황에 주목하면서 중국의 가톨릭교회를 도왔다. 중일전쟁 기간 그는 벨기에에서 강연을 통해 일본과 나치의 침략전쟁을 비판하고 중국의 항전 노력과 가톨릭교회의 사정을 알렸다. 그는 <益世報 해외통신>의 주편을 맡았으며, 외교관 시절의 인맥을 총동원하고 가톨릭 조직과 연계하여, 중국의 항일전을 국제적으로 선전하고 돕는 구국 활동을 펼쳤다. 陸徵祥의 구국 활동은 조국에 대한 사랑과 충효를 가톨릭적으로 실천한 것이다. 가톨릭 종교문화로써 중국문화를 개조·보완한다는 그의 이론은 도덕 역량을 너무 높게 평가하고, 현실적 기반이 없는 문화융합을 통한 구국론이라는 한계가 지적된다. 하지만 그의 구국사상과 실천은 20세기 전반기 중국 지식인들이 시도한 구국 활동의 큰 흐름 안에 포함되며, 중국정부와 교황청· 중국 가톨릭교회에 교량 역할을 함으로써, 중국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고 동서 문화의 융합을 시도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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