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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민지 (숙명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102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75 - 213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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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구국모험단은 1919년 6월 중국 상해 지역에서 조직된 폭탄제조 단체이다. 구국모험단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기에 독립전쟁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무기, 그 중에서도 폭탄제작을 담당한 단체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중요성을 가진 구국모험단의 조직과 활동을 본격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구국모험단은 1919년 6월 12일 중국 상해 프랑스 조계지 長濱路 愛仁里 24호에서 조직되었다. 단장은 김성근이며 단원들은 안창호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상해에 중앙 본부를 두고 중국 봉천, 길림, 러시아 신한촌 지역에 여러 지부를 설치하였다. 구국모험단은 1919년 11월 20일 대표적인 지방 조직인 러시아 신한촌에 지부를 설치하여 자금을 모집하고 폭탄제조를 실시했다. 신한촌에 지부를 설치한 것은 독립전쟁을 실시하려는 임시정부의 준비단계라고 볼 수 있다. 구국모험단의 대표적인 활동은 폭탄제조이다. 구국모험단은 임시정부로부터 받은 자금, 혹은 지부로부터 모은 자금으로 폭탄을 제조했다. 또한 구국모험단은 폭탄을 구입하거나 운반하는 역할도 하였다. 폭탄은 주로 서간도 지역에 있는 독립군에 운반되었다. 더불어 폭탄제조 기술자를 양성하는데도 힘썼다. 외국인 교사를 초빙하거나 외국 기술을 직접 배워오는 등 외국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로써 유능한 폭탄제조 기술자를 배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국모험단은 폭탄의 잦은 폭발로 인하여 1920년 6월 이후로 공식적인 활동이 불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원들은 임시정부 또는 의열단과 협력하여 계속해서 폭탄을 제조했다. 구국모험단의 의의로는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 외교적인 방법 이외에도 무장투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또한 구국모험단이 자발적으로 무기를 생산해낼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국모험단이 해외 각지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활동하였다는 점이다. 이처럼 구국모험단의 활동은 1920년대 초반 임시정부의 독립전쟁을 준비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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