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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데시마 다카히로 (경희대학교 일본어학과)
저널정보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일본학보 제133호
발행연도
2022.11
수록면
155 - 174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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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쟁 전 활약한 국사학자 아키야마 겐조에 주목해 류큐・오키나와의 역사가 근대 일본의 국사학에 어떻게 자리매김되어 갔는지 살펴보는 데에 목적이 있다. 아키야마는 류큐를 포함한 동아교섭사에 관한 중요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런데 과거 오키나와 및 일본의 대외교섭을 전전・전중기 국책으로서의 대외진출의 전사(前史)로 규정하기도 했다. 패전 후 전쟁협력자라는 낙인과 함께 그는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그런 이유로 그의 연구는 깊이 파묻혀 버려 충분한 비판적 검토를 받지 않은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위 문제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1924년 도쿄제대 입학을 앞둔 아키야마의 오키나와 슈리성 여행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슈리성 정전은 헐리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계획은 아키야마의 오키나와 여행 직후 건축사학이나 국사학과 같은 이른바 아카데미즘에 의해 저지되고 슈리성은 보존되게 되었다. 이러한 슈리성의 사례는 류큐왕국의 역사가 지워지고 사라진 것이 아니라, 국사학에 지탱되어 류큐왕국의 해상교역의 과거가 정통한 국사학의 일부로 그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음을 노정한다. 아키야마가 자신의 연구의 출발점이 황폐함이 극에 달했던 슈리성을 목도하면서라고 거듭 밝힌 이유가 거기에 있다. 국사학과 입학 이후 패전까지 이루어진 아키야마의 연구는, 말하자면 국사학 속에 류큐사를 자리매김해간 실천적 행보였던 것이다. 류큐가 해양국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옛 역사가 오키나와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과거로 다시 부상하느냐의 여부는 아키야마 내지 국사학이 부여한 역사적 의의와 어떤 형태로 마주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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