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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복기대 (인하대학교)
저널정보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인문과학연구 제74집
발행연도
2022.9
수록면
63 - 99 (37page)
DOI
10.33252/sih.2022.9.7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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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間島)는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선인 토문강의 어느 섬이다. 1860년대 간도로 이주하는 조선 사람이 점점 많아지며 청나라 백성과 마찰이 일어났다. 그러다가 1907년 대한제국 초대 통감 이토우 히로부미가 원래의 간도보다 넓은 지역을 동간도 · 서간도로 나누며 간도 구역을 획정하였다. 이 위치는 현재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 자치주이다. 1909년 후임 통감 소네가 맺은 간도협정으로 간도는 청나라 영토가 된다. 간도는 원래 한국 영토였지만 일본이 청나라에 할양한 것이다.
간도 위치가 혼란에 빠진 가장 큰 원인은, 한국 국경이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넘은 적이 없다는 인식이다. 조선이 중국의 영토를 침략하였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백산정계비’와 ‘백두산정계비’의 혼동이다. 백산정계비는 조선 숙종 때 국경인 백산에 세운 비석이고, 백두산정계비는 1900년대 초 일본이 대한제국의 동의 없이 대한제국과 청나라의 국경선으로 세운 비석이다. 그런데 일본은 백두산정계비에 백산정계비의 내용을 넣었고, 훗날 세워진 백두산정계비가 백산정계비로 둔갑했다. 다른 하나는 『대동여지도』이다. 이 지도는 매우 강렬하게 백두산정계비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1860년대 기록의 국경선은 『대동여지도』의 국경선과 전혀 다르며, 1800년대 중반기에 쓰인 『대동지지』에서 압록강 이북의 지명들이 『대동여지도』에서 모두 압록강 남쪽에 새겨져 있다. 간도 지역은 늦어도 통일신라 이후부터 한국사의 영토가 확실하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므로 우리 사료를 기반으로 다시 풀어나가야 한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는 말
2. 간도 관련 연구 결과 개략(槪略)
3. 1900년대 초의 만주의 정치적 상황
4. ‘간도협정’ 개략
5. 간도의 역사적 연원
6. 간도의 여운
7.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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