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민족연구원 민족연구 민족연구 제75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2 - 33 (2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7세기 이전 한국은 북방에서는 중국과의 사이에 국경이 명확하지 않았고, 동쪽 섬들에 대해서는 소유가 다소 애매한 상태에 있었다. 1699년(숙종 25년) 일본과의 외교적 합의(울릉도쟁계합의)와 1712년(숙종 38년)에 건립된 백두산정계비를 통하여 압록강, 토문강(송화강 지류), 독도를 경계로 하는 영토가 확정되었다. 그러나 근대민족국가로의 이행과정에서 일본은 1905년 독도를 편입하고, 1909년 간도(현재 중국의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영유권을 중국에 인정함으로써 조선의 영토적 통일성을 파괴하였다. 그 연장선상에서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근대민족국가의 형성에 실패했다. 이처럼 간도문제와 독도문제는 발생과전개과정에서 매우 유사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영토문제에서 이 두 가지는 같은레벨에서 논의되지 않고 있다. 백두산정계비는 국경조약이라는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으나, 울릉도쟁계합의는 독도문제 연구에서 매우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것이다. 또 독도문제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울릉도쟁계합의는 울릉도 영유권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가. 울릉도쟁계합의가 독도 영유권을 포함하고 있다면, 한국의 독도연구에서는 왜 이 점을 부각시키지 않는가. 또 1905년의 일본의 독도편입을 비판하는데 있어서 이론적으로 논란이 있는무주지 선점의 부정 및 편입에 대한 통고의무 불이행 외에는 반박할 수 있는논리는 없는가.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