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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성혜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민족문화 제61집
발행연도
2022.7
수록면
239 - 26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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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석 김종대는 詩書畵 三絶을 겸비한 김해출신의 유학자이자 서화가이다. 그는 법부주사로 재임하던 시기, 관료에 대해 단발령을 강행하자 이에 불복하여 관직을 버리고 낙향했다. 전통 선비의 상징이던 保髮[상투를 트는 것]을 지킨 당시 그의 행동은 선비의 지조와 의리를 지켰으며, 동시에 일제에 대한 저항을 드러낸 것이다. 이후 그는 고향 김해에서 문인서화가의 삶을 살았다.
낙향하고 서화가의 길을 갔지만 그러나 아석은 현실 서화계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예컨대, 1918년에 안중식을 비롯한 서화가 13인이 모여서 한국 최초의 근대적 민간미술단체인 서화협회를 조직하였는데 아석은 여기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서화협회와 관련한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또 1922년에 「조선미술전람회」가 개설되었는데, 아석은 이 전람회에 출품하지 않았다. 또 당시 개인 서화가가 운영하는 학원 혹은 스터디그룹 같은 ‘서화연구회’가 서울은 물론 지방에서도 개설되었는데, 아석은 이런 연구회도 조직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당시 서화가들이 개최하던 개인 서화전람회도 개최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아석은 근대이전 문인서화가의 길을 갔는데, 이를 달리 해석하면 문인서화가로 은거했다고 하겠다.

목차

1. 머리말
2. 근대전환기 한국 서화계의 동향
3. 문인서화가로 은거한 아석 김종대
4. 아석 김종대 서화의 맥과 인식론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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