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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상의 (인천대학교)
저널정보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인천학연구 인천학연구 제37권
발행연도
2022.8
수록면
123 - 186 (64page)
DOI
10.46331/jis.2022.08.3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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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시아·태평양전쟁기 동양방적에 강제동원된 노무자들의 동원 부터 귀가에 이르기까지의 강제동원 과정과 노동실태에 대해 고찰한 논문이다.
동양방적주식회사는 일본 오사카에 본점을 둔 대기업이다. 1934년부터 조선에서 조업을 시작하면서 일제 강점기 조선의 4대 방직업체로서, 전체 면직물의 1/3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동양방적의 조선 진출은 일본 국내에서 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공장법의 시행과 국제노동기구의 가입으로 1929년부터 16세 이하의 심야작업이 금지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조선의 면직물 수요가 많고, 다른 지역으로의 수출이 원활하였으며, 조선총독부의 대기업 유치 지원책이 활발했던 것도 그 이유였다.
공장법이 없는 조선에서 동양방적은 기계를 24시간 가동시키면서 주야 2교대의 심야작업을 하는 노동조건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하였다. 그 결과 인천공장 경영 1년 만에 곧바로 경성공장 설치를 추진하였고, 이 두 공장은 동양방적 그룹 내에서 ‘달러박스’로 불릴 정도로 높은 수익을 올렸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 군수품으로서 면포의 수요가 급증하였다. 이에 일제는 민간의 면포 수요를 제한하기 위해 면포를 배급하는 체제로 전환하고, 아울러 소규모의 민영공장을 폐쇄하여 군수품을 생산하는 대기업 중심으로 면방직업체를 재편하였다. 이 시기 동양방적은 군복용 면직물과 우비 등의 군수품을 생산하면서 성장을 거듭하였다.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은 조선총독부의 행정 지원에 의해 강제동원하였다. 정부에 신고된 자료에 의하면, 이 시절 동양방적에 강제동원된 노무자들은 만 9~14세의 여아가 다수였고, 지역별로는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출신이 대다수였다.
본고 작성을 위해 채록한 구술에 의하면, 전시하의 동양방적에는 ‘공출’을 피해 정혼을 했는데도 동원되거나 엄마와 함께 길을 가다 동원된 사람, 공부를 시켜준다는 말에 선뜻 따라나선 사람도 있었다. 농촌에 살던 이들은 갑자기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면서 그 속도에 맞추어 움직이는 공장 생활을 해야 했다. 주야간 2교대로 하루 12시간씩 노동을 하였고, 노동현장에서의 일상적인 구타와 감시를 버텼다.
아직 어려서 키가 작고 노동 숙련도가 낮은 이들에게는 일이 더 고되게 느껴졌고 부상의 가능성도 더 높았다. 작업장의 환경과 부족한 영양공급, 기숙사 단체생활로 공장에는 각기병과 옴병 환자가 많았고, 그들 중에는 사망자도 종종 있었다. 특히 구술 중에는 노무자들의 무월경에 대한 증언이 있었는데, 구술자들도 모두 스무살 전후가 되어서야 뒤늦게 초경을 하였으므로 이에 대해서는 진지한 후속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해방의 소식도 이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았고, 동원 당시와는 달리 그들의 귀가는 철저히 개인의 몫이었다. 공장법이 적용되지 않던 조선의 현실 위에 전시의 강제동원이라는 상황이 중첩되면서 행해진 노무동원의 진상이다.

목차

Ⅰ. 서언
Ⅱ. 동양방적의 조선 진출과 확장
Ⅲ. 동양방적의 아동동원과 노동조건
Ⅳ. 강제동원 노무자의 일상과 인식
Ⅴ. 결어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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