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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국립민속박물관 민속학연구 민속학연구 제49호
발행연도
2021.11
수록면
111 - 148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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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양도성의 도시구성을 고찰하는 일환으로 원각사의 10층탑 상징성 문제를 고찰하면서, 먼저 세조의 원찰로 개창된 원각사의 위치가 한양도성도의 중심점에 위치한 점을 확인하여, 이를 땅의 중심으로서 택중(宅中), 국중(國中)의 의미를 지니는 토중(土中) 세계론으로 조망하였고, 그에 따라 토중에 세워진 10층탑은 단순한 10의 숫자가 아니라 불교의 3차원적 공간론인 상하팔방의 합체로서 시방세계관의 구현이며, 나아가 수평적 도리 33천론과 수직적 3계 28범천론의 복합인 수미산 제석천 중심의 우주중심축 신화가 중첩 상징된 조형물로 보았다.
그런데 이 원각사에 걸렸던 이른바 원각사 대종(세조 11, 1465.1)이 성종 이래 중종대 성리학의 현창으로 말미암아 방치되었다가, 임진왜란(1592)으로 종루의 시보종이 불타 깨지면서 선조조는 이를 대체하는 용도로 원각사종을 남대문에 걸어 타종하였고,(1594.11) 이윽고 광해조가 이를 새로 지은 종각으로 옮겨와 내걸면서(1619.11) 조선후기 3백년간 한양도성의 아침저녁 시간을 알리는 시보대종으로 대활약을 하였다. 한말 고종조에 화재 등으로 종각을 개건하여 보신각(1895.3)으로 개칭하여서는 보신각종으로 불리며 광복이후 현대에 이르렀고, 문화재 보호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한 때문에 1985년 12월 제야 타종이 마지막 활약이 되었는 바, 조선초 세조대로부터 현대 한국 80년대까지 장장 521년간(1465-1985) 긴 시간의 역사를 호흡하였다.
조선시대 종루의 시보대종은 국초부터 아침저녁으로 파루와 인정의 시각에 불교의 33천과 28천 공간신화를 재현한 숫자로 타종되었기에 매일 하루의 시간을 여닫는 시간학에 불교적 코스몰로지가 작동된 생생한 현장이 되었으며, 이는 조선의 유교사회에서 불교의 종소리가 울리는 문화적 역설로 주목되었다. 특히 조선후기는 시보대종을 별도로 주조하지 않고 세조대 제작한 원각사 대종과 흥천사 대종을 재활용함으로써, 세조가 원각사 십층탑과 대종 등을 통해 추구하였던 불교적 공간과 시간학의 양면 코스몰로지가 조선의 하늘을 지켜 전승되는 면모였음을 고찰하였다.

목차

1. 서론
2. 원각사 10층탑의 토중(土中)과 불천(佛天) 코스몰로지
3. 세조의 원각사 창건과 한양도심의 공간활용론
4. 원각사 대종의 여정과 시보대종 역할
5. 종각 시보대종의 시보법과 경점법
6.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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