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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현광호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숭실사학 제35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07 - 142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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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탁이 고종을 시종하게 된 것은 1896년의 아관파천이 계기가 됐다. 손탁은 안내자 없이 언제든지 황제를 알현할 수 있었다. 왕실 출입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배경이 됐다. 고종 소유의 가옥은 대부분 손탁 명의로 되어 있었다. 무관의 한국 황후라는 별명은 손탁의 권력을 상징한다. 손탁이 마련한 연회는 프랑스 요리, 프랑스산 샴페인, 유럽산 다과, 그리고 한국의 궁중무용, 오케스트라 연주 등으로 구성됐다. 고종은 손탁호텔에서 요인을 접대하게 했다. 고종이 국빈을 손탁호텔에서 숙박하게 한 것은 열강과의 외교로 한국의 독립을 유지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각국에서 온 외교관들도 손탁호텔에서 숙박했다. 손탁은 고종과 한국의 황실 및 정부와 접촉하는 데 있어서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손탁은 호텔 경영, 황실의 부동산 관리, 서울의 대규모 건축공사를 통해 많은 재산을 축적했다. 손탁은 여러 사업에서 벌어들이는 부수입이 연봉보다 몇 배는 많았다. 그의 재태크 능력은 매우 탁월했다. 손탁은 황실의 주요 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했다. 손탁이 특히 내장원경 이용익을 후원한 것은 중립 외교노선과 근대개혁에 대한 공감 때문이었다. 한편 손탁은 브라운을 지원했다. 손탁은 브라운과 협력하여 한국의 개혁에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손탁은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그같은 그의 어학 능력은 한국 왕실의 외교에 개입하게 되는 요인이 됐다. 손탁은 마르텔, 샌즈, 이용익, 현상건 등과 제휴했다. 이용익은 러일전쟁 발발 직전에 국외중립선언을 준비했다. 손탁은 이용익의 국외중립선언을 적극 지원했다. 1904년 2월 러일전쟁 발발 이후 손탁은 고종의 외교를 지원했다. 손탁은 1905년 8월 한국을 떠난 뒤 1906년 3월 20일 한국으로 귀환했다. 손탁의 유럽 여행은 고종의 명령으로 만국평화회의 여건 타진, 독일 황제와의 외교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손탁은 베델의 반일 언론활동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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