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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정욱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일본연구 일본연구 제24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367 - 392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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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의 개항 초기부터 유곽이 대중화되는 1930년 전후를 기점으로 조선의 유곽을 보편성은 물론, 지방 도시 군산이라는 지역적 특수성과 함께 유곽 문화의 정착과정을 살펴보았다. 1900년대 초반 ‘블루오션’이었던 유곽산업은 화류계 여성들을 기반으로 막대한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했다. 일본에 의해 조선 전역에 형성된 유곽은 기예를 중시했던 조선의 기생제도의 변질을 가져왔으며 화류계 여성들의 경제적인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였으며 매춘의 번창으로 이어졌다. 또한 조선에 체재한 일본인들에게 유곽은 경제적인 풍요를 의미하던 지역이었으며 지방 도시인 군산의 신흥동 일본인 거류지와 유곽지역의 조성은 조선인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았다. 또한 신흥동 일본인 거주 지역과 개복동 조선인 거주 지역으로 분리시킨 지리적 차별은 유곽을 통해서도 유흥문화의 차별을 도모했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신흥동 유곽의 상황을 사진자료 등을 통해 군산의 화류계가 대도시에 버금갈 정도의 유흥문화를 이루었음을 살펴보았으며 유곽 문화가 한일 양국의 문화가 융합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밝혔다. 유곽 문화는 제국 일본이 식민지 조선의 전통문화를 강제적으로 말살하며 일본화를 시도했던 다른 분야와는 상이함을 엿볼 수 있었다. 이는 문화적인 이유보다는 경제적인 이유를 우선시했던 유곽문화의 특징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이식된 유곽 문화는 1945년 해방과 함께 단절된 것이 아니며 이후 미군 기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집창촌으로 이어졌으며 일부는 현재까지도 ‘아픈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제국 일본의 식민지 도시 건설에서 유곽이 차지하는 의미와 함께, 지역 전통사회에 끼친 영향을 밝히고자 한 본고는 100여년의 근대 한일관계사에서 지역적인 특수성을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향후 한일 양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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