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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주경미 (부산외국어대학교 동남아지역원)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백제연구 제62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71 - 99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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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 석탑 출현기의 사리장엄구 및 사리장엄방식의 변화 양상에 대해서 현존 유물과 외국 자료와의 관계를 비교 검토하여 고찰한 논문이다. 한국의 사리신앙과 장엄 의례는 6세기 중엽 중국 남조와의 교류를 통해서 처음으로 전래되어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발전했다. 석탑은 7세기 초반부터 백제와 신라를 중심으로 건립되기 시작했으며, 두 나라의 사리장엄방식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여기에서는 백제 왕흥사지와 미륵사지, 그리고 신라 분황사와 황룡사지, 감은사지 출토품들을 중심으로, 탑내 사리봉안처의 위치, 봉안된 주요 성물의 성격, 공양구의 매납 방식, 사리기의 구성 및 양식 등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비교 고찰하였다. 백제와 신라의 사리장엄구 및 사리장엄방식은 언제나 동시대 중국을 거쳐 전래된 새로운 불교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나름대로 자기화되는 양상을 찾아볼 수 있었으며, 꾸준히 새로운 조형 양식을 창출해가면서 발전하였다. 639년경 건립된 백제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는 탑 기단 하부에서 남방 불교계에서 성행했던 佛爪髮舍利 공양의례와 관련된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탑신부에서는 수나라 인수사리장엄방식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백제 특유의 미술 양식을 보이는 사리장엄구가 봉안되었다. 백제 군수리 사지에서는 남방 불교계의 영향으로 보이는 불상의 봉안이 탑내에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백제의 사리장엄방식과 의례는 스리랑카와 동남아를 거쳐 중국 남조로 전해진 남방 불교계의 영향을 상당히 크게 받으면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양상을 보인다. 그에 비해 신라에서는 중국 남조 문화의 영향보다는 오히려 7세기 이후 중원의 통일 왕조인 수·당대 불교 문화의 신경향 전래에 힘쓰면서 신라적 양식으로 발전시켰다. 즉, 7세기 이후 백제와 신라는 각각 중국이나 외래의 新文化 경향을 나름대로 취사선택하면서 각각 독자적인 양식의 불교 문화와 사리장엄 방식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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