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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상균 (강원도청)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27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369 - 40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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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시대에 활발히 경영되었던 구곡원림을 사대부들이 즐겨 유람한 현상에 주목하였다. 구곡은 유가적 사상을 근간으로 한 사대부들의 산수유관에 부합되는 유람명소였다는 점과 구곡의 중심인물이 속한 학파적 배경이 있는 후학들이 자주 유람하고 결속력을 공고히 하는 등의 유람양상을 살펴보았다. 조선의 구곡문화는 주자의 「무이구곡」 수용으로 시작되었고, 이황⋅이이를 중심으로 성리학이 심화되는 16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정착된다. 사대부들은 구곡원림을 설정하고 경영하여 조선에서 주자의 「무이구곡」을 구현하고자 했다. 구곡의 중심인물은 이황⋅이이 등 조선 성리학자들이었다. 주로 영남⋅기호학파의 중심무대였던 경북과 충북을 중심으로 구곡문화가 번성하였다. 사대부들의 산수유관은 유가적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유람은 공자와 주자를 본받아 산수에서 호연지기를 기르는 등 학문의 발전과 성취를 위해 일생에 한번쯤 행해야 하는 문화행위로 인식하였다. 구곡은 대부분 수려한 경승에 설정되었고, 특히 사대부들이 학문과 사상적 이념으로 삼았던 성리가 구현되는 장소이자 선학의 자취가 배어 있는 곳이라는 장소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구곡은 수려한 경승과 더불어 유가적 학문의 실천사상이 강하게 배어있다는 장소적 특수성으로 인해 사대부들의 산수유관에 적합한 유람명소로 부각되었다. 조선의 구곡에는 구곡의 최초 경영자, 또는 후학들이 구곡을 설정하게 되는 중심인물이 있었다. 그러므로 구곡은 그 중심인물이 주자의 학문을 계승하고 성리의 도를 실천했던 장소라는 상징성과 학파적 배경이 있는 장소가 되었다. 구곡의 유람객도 중심인물의 학맥을 계승한 후학들이 많았다. 사대부들은 구곡유람을 통해 선학의 자취를 기념하고, 門徒들과 교유하며 학파적 결속력을 공고히 하였다. 이는 금강산이나 팔경의 유람에서는 볼 수 없고, 학문적 宗祖의 강학처⋅은거지 등이나 구곡유람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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