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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음악사학회 한국음악사학보 한국음악사학보 제54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5 - 30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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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통음악 명인(名人)들의 음악활동에 대한 연구가 구술(口述)을 통해 진행되고,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밝힐 수 있는 자료들이 발견되면서 이미 잘 알려진 명인들과 같은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同名異人)의 음악가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동명이인의 존재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한 명인의 기록에 동명이인인 음악가의 기록이 포함되는 오류(誤謬)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동명이인 명인들에 대한 음악활동에 관한 연구에서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김운선(金雲仙)은 현재 작고한 가야금명인인 김죽파(金竹波, 1911~19 89)의 일제강점기 때 예명(藝名)으로 알려져 있는데, 본 연구를 통해 일제강점기 때 김운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자 5명, 남자 1명, 성별 미상 1명으로, 김죽파를 포함하여 총 7명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여자 김운선은 모두 기생(妓生)이었으며, 한남권번(漢南券番) · 조선권번(朝鮮券番) · 야명권번(夜明券番) · 창기(娼妓), 소속 미상으로 한남권번 · 조선권번 · 야명권번의 김운선은 각각 사진 상 이인(異人)으로 밝혀졌고, 조선권번의 김운선이 김죽파(1911~1989)로 확인되었다. 한남권번과 야명권번의 김운선은 사진이외의 기생으로서 활동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다. 창기 김운선은 음독자살 기사를 통해 존재가 밝혀졌고, 소속미상의 김운선은 한때 ‘명기'(名妓)로 일컬어졌던 인물로 거문고를 잘 탔으나 신세가 몰락하여 거지가 되었다는 기사를 통해 밝혀졌다. 남자 김운선은 오비취(吳翡翠)가 󰡔삼천리󰡕(三千里) 잡지에 기고한, 남자명창들에 대해 서술한 글에서 짤막하게 소개되어있으며 판소리꾼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성별 미상의 김운선(金雲仙)은 조선음악협회(朝鮮音樂協會)와 조선음률협회(朝鮮音律協會)에 관한 기사들을 통해 밝혀졌는데, 이동백(李東伯) · 심상건(沈相健) · 김해선(金海仙) 등과 함께 공연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기존의 김죽파에 대한 기록에서 김죽파가 이들과 함께 공연활동을 했다는 기록이나 음악단체에 소속하여 활동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조선음악협회와 조선음률협회에서 활동한 김운선이 김죽파와 동명이인임은 확실하다. 여기서 성별 미상인 음률협회(音律協會) 김운선을 여자로 간주할 경우 심상건 · 김해선 등과 함께 활동한 것으로 보아 1930년대 ‘여류명창’으로 분류하여 1895년~1905년 즈음에 출생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앞서 출생년도가 추정 가능했던 한남권번 김운선 및 소속 미상의 명기(名妓) 김운선과 출생년도를 비교해보았을 때 음률협회 김운선의 추정 출생년도와 1895년~1900년 사이에서 겹치고 있어 이 세 인물이 동일인물일 가능성도 있으나, 추정 출생년도 외에 활동상의 개연성(蓋然性)이 전혀 없어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이렇듯 일제강점기에 김운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김죽파 외에 6명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필자가 연구했던 김죽파의 음악활동에 대한 내용에서도 오류가 발견되었는데 앞으로 동명이인에 관한 조사가 더 활발히 이루어져 명인들의 음악활동에 관한 연구가 더 명확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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