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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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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백산학회 백산학보 백산학보 제101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61 - 86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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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연화문 와당은 4세기 중엽~말엽 경 국내성지역에서 권운문 와당을 계승하여 와당 면을 6등분한 6구획 형태로 출현하고 있다. 이에 비해 평양지역에서는 국내성지역과는 달리 권운문 와당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연화문 와당의 경우에도 6구획이 아닌 4구획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형태적인 특징은 4구획 와당의 제작 전통이 평양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유지되어 왔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4구획 와당의 제작 기술이 기존에 선행하고 있었던 낙랑 운문 와당의 주요 제작 전통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고구려 4구획 연화문 와당은 기존에 평양지역에서 활용되고 있었던 낙랑 4구획 운문 와당의 제작 전통 위에 국내성지역에서 새롭게 등장했던 6구획 연화문 와당이 서로 결합되면서 출현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사실은 4구획 연화문 와당이 출현하는 4세기 말엽~5세기 초엽 경, 평양지역에서는 국내성지역과는 구별되는 자기들만의 제작 전통을 고수하려는 造瓦 집단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국내성지역에서 연화문 와당의 출현 과정은 낙랑 양뿔형 운문 와당→고구려 권운문 와당→6구획 연화문 와당 순으로 전개되고 있었지만, 평양지역에서는 권운문 와당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채, 낙랑 운타형 운문 와당에서 직접 4구획 연화문 와당으로 전환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처럼 4구획 연화문 와당이 평양지역에서만 발생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독자적으로 유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평양지역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造瓦 집단 내지는 토착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제작 전통은 평양 천도 이후 더욱 독자적이고 지역적인 색채가 가미되면서 독창적인 고구려 복합문 와당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하나의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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