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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성익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강원사학회 江原史學 江原史學 제30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 - 24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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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가 인도의 쿠시나가라에서 입멸하고 출현한 사리를 8개소에 나누어 봉안한 것이 분사리의 시작이다. 한국에서는 고려말에 인도 출신 元나라 승려인 指空의 사리가 고려국에 전달되어 사리를 여러 곳에 나누어 봉안한 것이 한국 분사리 부도의 시작이다. 이는 고려말 나옹과 태고, 조선 초기 함허로 이어지고,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부용의 제자인 청허와 부휴의 사리가 분사리되면서 조선후기에 이르기 까지 한 승려의 사리가 여러 곳에 나누어 봉안되는 장례풍습 이 유행하게 되었다. 특히, 청허와 부휴의 제자들에 의해서 두 스승에 한 현창운동이 전개되어 분사리 부도의 건립은 크게 유행하였다. 이러한 승려의 장례풍습이 주자학을 국가의 사상과 정치적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에 유행하게 된 것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국가의 위기에서 많은 승려들이 여러 전쟁에 참여하고 이후에는 산성쌓기 등에 많은 공헌을 하면서 사부들로부터 묵시적이고 때로는 왕실의 절적 후원을 받아 사원경 제가 활기를 띠면서 분사리 부도의 건립은 불교장례 풍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분사리 부도는 石造로 조성되었는데 당의 양식을 따라 조성되면서 도 지역적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원인은 부도가 해당 시의 산물이면 서 각기 분사리 부도가 입지한 지역색을 반영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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