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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백길남 (한성백제박물관)
저널정보
백제학회 백제학보 백제학보 제25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85 - 207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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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梁書』 백제전의 ‘自置百濟郡’ 구절을 중심으로, 中國史書의 편찬시기에 따라 ‘百濟略有遼西’ 기사 서술에 차이가 있음을 주목했다. 이런 현상은 중국왕조의 사서 서술방식과 백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해된다. 北朝와 대립했던 南朝는 周邊諸國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남조는 주변제국과 朝貢·冊封관계 속에서 형식적이나마 자국의 대외적 위상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宋書』 등 남조 시기에 편찬된 사서의 외국전은 조공·책봉관계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외교기사 위주로 서술됐다. ‘백제약유요서’ 정보는 남조의 결핍을 채워줄 만한 흥미로운 소재였다. 백제가 晉朝 국명과 결합된 晉平郡縣을 설치했다는 것은 남조의 충실한 ‘藩國’임을 상징할 만한 사건으로서 해석될 수 있었다. 반면, ‘백제군’은 진평군을 대신하여 설치된 지명이었고 특히 ‘스스로 설치했다’는 표현은 ‘私假制’가 활발히 운영된 남조와 백제의 조공·책봉관계 양상과 충돌한다. 따라서 ‘자치백제군’ 정보를 인지했다하더라도, 『송서』에는 최종적으로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唐朝는 南北朝의 자료와 인식을 계승하여 남북조 各國史를 편찬했다. 『梁書』는 남조의 자료와 대외인식을 바탕으로 저술됐다. 그리고 『양서』에는 당 시기까지 축적된 백제에 대한 정보가 반영됐고 「梁職貢圖」와 같은 南朝人의 견문 내용이 적극 인용됐다. 그리하여 『양서』에는 백제 국력의 추이와 백제 사회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반영될 수 있었다. 이는 7세기 전반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정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확보하고자 했던 당조의 대외인식과 무관하지 않았다. ‘東夷强國’으로의 백제의 성장과 ‘백제’ 국호의 유래에 대한 唐人의 이해가 증대되는 가운데, 『양서』에 ‘자치백제군’ 구절이 採錄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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